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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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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가르침은 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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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깊어진다.날씨는 더워 짜증이 일상인 이 때,반상에서 노니는 것 또한 삶의 유쾌한 한 때리라.그러나 삶과 반상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실타래로 엮어져 있는 것만 같아,때로 애련(哀憐)이 남기도 한다.
지난 6월 2일 중국 선천에서 열린 후지쯔배 8강전,대국자는 조훈현 9단(흑)과 고바야시 고이찌(小林光一) 9단.이런 날이면 한국기원 기사실은 만원이다.인터넷 중계도 있거니와 사정이 여의치 않을지라도 기보의 전송은 팩스를 통해서 시시각각 날아온다.
주로 젊은 기사들이 기사실을 가득 메우게 되는데,문제는 흑1(실전의 흑25)로 씌웠을 때.백2,흑3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흑7까지 된 장면이다.누군가가 한마디 던진다.약간 속된 표현이지만,“고바야시도 한 물 갔군”.백2,흑3의 교환이 백의 대악수라는 점에서 안타까이 던진 표현인데….
백2는 흑3과 교환하여 대악수.백이 3에 두어 흑1과 ●와의 밭전자(田) 중앙을 째는 흑의 약점을 없애주었기 때문이다.어떻게 이런 실수를 다할까.감각적으로도 그런 수는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법인데.
아쉬움은 시간에 있다.나이가 들면 프로는 피곤하다.20세기 최강의 기사라고 꼽히던 조치훈도 이미 무너졌고,모든 기사들이 세월 앞에 덧없이 사라진다.고바야시도 어느새 49세.1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의 제1인자 였던 그.
필자가 알기로 예술의 세계에서도 뛰어난 걸작은 젊은 시절에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라 한다.성장의 위기감이 예술가와 세계와의 불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리라.
바둑도 그러하다.한창 공부할 때면 반상의 비밀이 밤하늘 별빛처럼 쏟아지고,우리는 우주의 저 끝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다.그 순간의 인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떨리기도 하지만.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가면,우리에겐 쉴 때가 다가온다.정신은 생기를 잃고 시간은 휴식을 권한다.
시간은 우리 모두,아니 생동하는 젊음에게도 겸손하라고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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