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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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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의 감각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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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인간 고유의 영역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따라서 의식이 있고 난 다음 언어가 발생했다는 것이 상식이다．그러나 인류학의 최근 성과는 언어가 의식 보다 먼저 발생했을 것이라는 놀랄만한 이론에 긍정적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바둑에서는 어떨까．상상력(머리)이 먼저일까,아니면 손끝의 감각이 먼저일까．이런 질문은 무의미하고 억지일 수도 있다．과연 그럴까．
기보를 보자．지난 24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중전(韓中戰)의 이창호 9단(백)과 창하오(常昊) 9단의 열전보이다．초점은 백1과 3．
백1과 3!이런 수를 대하면 숨을 깊이 들이쉬게 된다．감탄과 함께 '아,나의 손끝은' 이라고 부러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참으로 조심스럽고도 노련한 수가 아닐 수 없다．백1을 3에 먼저 두기 쉬운데,그러면 흑A로 다가올 것이다．다음 수순은 백B,흑C．흑이 우변과 함께 하변을 자연스럽게 지키는 수순이 될 것이다.
백1과 3은 점심 직후 착점한 것인데 필자는 백1,3을 백3,흑4,백1,흑2로 예상하고 있었다．결국 모양은 같지만,그 과정이 달랐던 것이다．돌이켜보면 그토록 자연스러운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그 자연스러운 수를 보면서 바둑이란 역시 상상력이나 머리가 아닌,손끝으로 두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이창호9단의 수는 사심(邪心)하나 끼이지 않은 자연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바둑은 머리보다 손끝이 먼저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생긴다．명인급이 아니면 백1과 3의 수순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따라서 평범한 우리로서는 바둑을 손끝이 아닌 머리로 두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자기비하감에 젖어든다．역시 인간도 별것이 아니라는 그런 느낌 말이다．
2000/9/27 문용직 프로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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