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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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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도 쉬지않는 프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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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를 하나 보자. 지난 2002년 9월 20일에 두어진 SK엔크린배 신예십걸전 결승 1국. 강지성 4 단(백)이 흑의 옆구리에 촅로 붙인 때가 12시 45분. 그러니까 점심 시간 15분 전이다. 흑을 잡은 백대현 4단은 둘 생각을 않는다. 아주 난해하여 수읽기가 어려운 장면. 필자는 인터넷의 사이버 해설을 맡았는데, 참고도를 보여 드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몇 개의 참고도로 15분을 넘긴다는 것은 애기가들께 실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 저런 말로 시간을 보냈다. 프로는 장고할 때 뭘 생각하는지, 형세는 어떤지, 백4단과 강4단의 최근 성적과 쌍방간의 전적 등을 보여드리곤 했다. 시간은 어김이 없어 1시, 점심 휴식시간이다.
“과연 점심 시간에 이들은 바둑을 생각할까요? 다음 한 수에 골똘히 몰입할까요?” 라는 자문(自問)으로 오전 해설을 끝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필자 자신의 경험으로 답을 하나 냈었다. 그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머리속으로 그림을 못 그려서가 아니라 아침 10시에 머리를 맞댄 후 3시간의 숙고에 지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1시간이 흘러가 오후 2시, 대국이 재개되었다. 그런데 앉자마자 백4단이 흑1을 두고 강4단은 백2로 받으면서 일사천리로 백18까지 진행되지 않는가. 2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18수를 진행한다?
하, 그 참. 점심 시간 내내 서로가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서로의 견해가 일치했음이 틀림없었다. 놀란 사람은 필자. 어찌 그리 수순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을까. 필자가 청년시절 바둑을 두던 1980년대에 비해 청년들의 바둑 수준이 높아졌음에 틀림없는 증거!
과연 젊은 친구들이 열심이구나. 체력이 따르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버티지 못하는 법이고, 정신력이 따르지 못하면 체력만으로는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이 바둑인데. 한국의 바둑계는 앞날이 밝구나. 정신도 체력도 건전한 후배들을 바라보는 선배의 마음은 넉넉하기만 하다.
(2001.10.11 / 문용직 프로四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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