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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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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소녀도 프로는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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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은 박카스배 천원전 1차 예선 날이었다.76세의 고재봉 사범님부터 초등학교 6학년 12세 소녀 최동은양까지 참가하는 신년의 첫 시합이다.이 날 프로들은 새해 남다른 각오와 포부를 가진다.
올해는 본선에서 활약하겠다고 다짐하는 프로,타이틀을 한 번 따보겠다고 마음을 졸라매는 프로,두는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프로까지 다양하다.
필자가 만난 상대는 지난해 말 입단하여 최연소 프로로 등록된 최동은양.3년 전에 강동 명인 바둑도장에서 한 판 두어보았는데,숫기가 약해 언제 입단할까 걱정도 했던 바로 그 소녀.
대국은 신중하다.필자는 혹시나 필자의 자세가 바르지 못함으로 인하여 프로의 첫 인상이 나빠질까 걱정부터 앞섰고.최양은 33세나 높은 연배의 선배를 만나 조심스런 인상이 역력하다.그러고 보니 20년 전 필자가 입단하였을 때의 첫 대국이 또렷이 글자처럼 떠오른다.그 때는 필자도 얼마나 조심하고 신중하였던지.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필자의 그런 신중함도 조심스러움도 다 빼앗아 가버렸다.남은 것은 무감각하고도 둔한 감성뿐.여린 잎줄기 같은 섬세한 감정의 뿌리는 이미 다 뽑혀버리고 남은 것은 세월의 잔재뿐.
필자는 마음을 놓는다.‘12세 꼬마가 얼마나 잘 두랴’하는 그런 감정이 남아 있는 필자를 필자 스스로가 의식한다.3년 전의 그 여리디 여린 감성의 소녀가 과연 얼마나 승부의 차디찬 세계를 견뎌낼 수 있을까.
다음 기보가 바로 그날 두어진 것으로 필자가 흑이다.초반부터 약간의 방심 탓인지 흑의 행마가 엷었다.백은 두껍게 두고.시간도 필자는 15분.최양은 50분.그 어느 순간이었다.백1(실전의 백50)이 반상에 찰싹 달라붙은 것은.그리고 그 순간 바둑은 끝났다.흑A는 백B로 좌변 흑이 죽는다.그렇다고 흑a,백A,흑b,백c,흑d 이하 흑h,백i로 나가는 길은 삼각으로 표시된 흑돌들이 상처받아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한 결과.
거기서 승부는 끝났다.12세 소녀도 프로는 프로.참 다부지구나.
문용직<프로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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