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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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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희망을 보인 盤上의 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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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바둑계의 사건 중에서 무엇이 가장 손꼽을 만한 일일까. 이창호의 상금 10억원 돌파? 이창호의 타이틀 100개,1000승 돌파? 후지쓰배와 삼성화재배 우승 등에서 보인 조훈현의 놀라운 투혼? 한국 기사들의 중국 바둑리그 진출에서 엿보인 국제화의 새로운 국면? 바둑의 스포츠화?
그렇다. 그 모든 것이 값이 있을 것이다. 그러리라. 보는 자의 마음에 따라 상대적인 기준에 따라 모든 것이 값이 있으리라.
모든 것이 값이 있다는 그 말,그대로 우리는 그 모든 것에 희망을 걸고 뜻을 둔다. 그렇지만 세월은 흘러가고 역사는 변한다는 점에 시선을 모은다면,역시 16세 소년 박영훈 2단의 제6기 박카스배 천원전 우승이야말로 많은 변화의 의미를 압축한 사건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16세 우승은 이창호 9단이 90년 제12기 대왕전에서 14세에 우승한 다음의 기록.
이번 박2단의 우승은 단위(段位) 개념이 현재로선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지난 50년간 지속되었던 프로 단이 권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그 차이가―초단과 9단의 차이가―퇴색해졌음을 말해준다. 그만큼 반상의 세계는 변했다. 박2단의 우승은 프로 세계의 개혁을 앞당길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박2단의 우승 뒤에 가려진 역사의 아이러니. 박2단은 이번 천원전 준결승에서 서봉수 9단을 만났다. 서9단이 누구인가. 30년 가까이 흘러간 1972년 19세 2단으로 조남철 명인에게 도전,최저단 명인에 올랐던 그다. 그런 그가 이번엔 정반대 입장에 서게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는 언제나 존재하는 모양이다.
아이러니한 그 대국을 잠깐 눈여겨보자. 박2단의 기백을 보자. 흑1이 적절한 삭감이자 자신감을 보여준 한 수. 흑A,백B,흑C 정도로 어떤가 하는 지적도 있었는데 소년은 그 정도로는 기백을 만족시키기 어려웠던가보다.
2단의 타이틀 보유자라！입단한 지 2년도 채 되지 아니한 햇병아리 소년. 홍안의 소년이 타이틀 보유자라！한국 기단의 앞날이 탄탄하게만 보인다. 언제나 변화와 희망은 권위에 억눌리지 않은 청춘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문용직(프로4단 200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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