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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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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슈에이，手談으로 쌓은 교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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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에 실패하여 도피한 망명객의 하루는 어떨까.우울하고 외롭기 그지 없을 것이다.
무너져내리는 가문의 운명을 두 어깨에 짊어진 청년의 심사는 어떨까.역시 마찬가지로 견디기 힘든 수모감과 무력감에 저 홀로 서러워할 것이다.
구한말의 개혁가 김옥균(1851-1894)과 일본의 제19대 본인방 슈에이(秀榮 1852-1907)는 그렇게 만났다.울적할 때면 바둑으로 평상심을 회복하려 했다는 김옥균.정치적 제약으로 활동 반경이 좁을수 밖에 없었던 망명객은 바둑모임을 자주 열었고 그로써 시간을 보냈다.그런 김옥균과 의기가 투합한 슈에이.무너지고 떠내려가는 시대의 극한에서 그들은 바둑으로 교분을 두터이 나누었다.김옥균이 2년간 오가사하라(小笠原)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에는 슈에이가 찾아와 3개월간 침식을 같이 하기도 하였다.
바둑은 그 내면에 무슨 힘이 있기에 생면부지의 지사(志士)와 재사(才士)간에 그토록 도타운 우정을 나눌 수 있게 하였던가.알 수 없는 일이다.바둑은 어디에 그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다음 기보는 바로 그 슈에이와 김옥균의 대국보이다.시기는 1886년 2월 20일.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기보.칫수는 6점.흑1 이하 흑3은 공격적이고 변화 지향적인 수법.흑9,11,13,15는 전국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깔끔한 대국관.요즘으로 치면 강한 1급 수준이다.그는 서재에 항상 바둑판을 비치해두었다고 한다.
바둑은 말없는 가운데 나누는 대화이기에 수담(手談)이라고도 한다.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뜻에는 말이 필요 없는 법.한 판의 바둑을 나누면 곧 십년지기(十年知己)가 되는 것도 뜻이 통해서이다.뜻이 통하면 마음이 통하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
지난 3일은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일어난 지 117년째가 되던 날.풍운아 김옥균이 그의 일생에 한 번 건곤일척의 승부를 건 날.그 날을 지나게 되어서 뒤돌아보게 되는 한편의 감회이다.
문용직(프로4단 2001.1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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