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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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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인연，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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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3월 20일의 하루가 떠오른다. 그 때 ‘바둑에서 맡는 향기란 어떤 것인가’ 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 이야기를 한 번 쓴 적이 있었다.
“대국 당시 김수장 9단은 마음속으로 어떤 인연을 느끼면서 백1을 두었다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김9단과 필자는 묘수풀이를 만들고 감상하는 사소한 일에 가끔 정성을 들인다. 언젠가 필자가 백1, 3의 묘수풀이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 그 때 김9단은 ‘묘수이지만, 작위적인 냄새가 나는데…’ 하고 넘어갔었는데, 실전에서 드물게 만났던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는 1선과 1선이 만나는 귀(隅), 그 자리에서의 인연. 아깝다. 그 바둑을 이겼다면 이 묘수는 아주 빛이 났을 텐데…. 그러나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묘함보다도 그 향기에 더욱 마음을 줄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서 ‘향(香)을 파는 사람도 무심하고, 사는 사람도 무심하지만, 향을 사지도 팔지도 않는 사람도 그 향내를 맡는다,’ 고 썼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기원 2층 대회장. 명인전 1차 예선에서다. 점심 후 재개된 박승철 2단(백)과 필자와의 오후 대국.
대국 중 깜짝 놀란 필자. 다시 한 번 그 묘수가 등장하지 않는가. 백1이 묘수. 흑2 필연일 때 백3, 5로 패를 만든다. 다음 흑a는, 백b, 흑c, 백d로 패를 내고, 흑b는 백a로 패를 낸다. 백1이 묘수인 까닭은, 백1을 5에 먼저 젖히면 흑1로 한칸 뛰는 수가 묘수. 2의 단점과 b를 맞보아 흑이 살아간다.
그것 참, 또 한 번의 우연이라니…백1은 상당히 드문 묘수이다. 그런데 또 만나다니.
이 바둑도 필자가 졌다. 바둑은 졌지만, 또 한 번 반상에서 만나는 우연에 감사하기만 하다. ‘향(香)을 파는 사람도 무심하고, 사는 사람도 무심하지만, 향을 사지도 팔지도 않는 사람도 그 향내를 맡는다’는 그 말에 다시금 감동하면서.
바둑이라는 승부의 직업, 그 차디찬 세계에서도 향기란 맡아지는구나. 누구나 맡을 수 있는 인연이라는 그향기….
(2001.11.8 / 문용직 프로四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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