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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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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둑의 성장과 조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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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서울에 온 때는 지난 74년.프로의 대국을 기록하는 일은 중요한 공부의 하나였다.처음으로 기록한 대국이 김인 국수와 조훈현 7단(당시)의 도전기였던가.운현궁 옆 골목의 고즈넉한 운당(雲堂)여관,그 깊숙한 안방에서.
당시 조훈현은 공군을 막 제대한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인상적인 것은 예리한 눈매.그의 감각만큼이나 푸르고 날이 선 눈빛.반상의 행마는 여린 듯 섬세하고 때로는 서늘한 비수와 같고.
그 조훈현이 이제 50을 넘어서고 각진 턱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일본의 주간지 고(碁)가 5월20일부터 그에 대한 특집을 ‘정점(頂点)에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다.아직도 승부의 일선에서 쩡쩡한 승부기질을 발휘하고 있는 그이기에 어쩌면 그 연재는 너무 빠를지 모른다.그러나 한편으론 참으로 적절한 시기의 선택이 아닌가도 싶다.마침 월간 ‘바둑’에 조남철 선생의 인생 역정이 연재되고 있기 때문이다.조남철 선생이 한국 바둑의 기틀을 잡았다면,조훈현은 그 수준을 두 단계 높였다.천재적인 재주와 질식할 듯한 집념,남모르는 노력으로.
한국 바둑의 문을 활짝 열어준 상징적 사건도 그의 작업이었다.첫째는 87년 임해봉과의 대국으로 조훈현이 긴장하고 있음을 옆에서도 여실히 볼 수 있었다.69년에 소년 조훈현은 임해봉의 명인전 도전기를 기록하지 않았던가.그런 태산같은 존재를 젖혀야 했던 압박감! 둘째는 89년의 응씨배 우승.좁은 한국에서 홀로 걸었던 조훈현이 세계정상에 우뚝 섰던 승부.
그의 장래를 예견한 13살 때의 감각을 음미해보자.스승 세고에의 훈장 수여 기념식장에서 두어진 오청원 선생과의 2점 대국으로 1수 1분의 속기바둑이다.흑1 급소에 백2의 맥점.참으로 깨끗한 상응(相應).20세기 바둑계의 뛰어난 천재 두 사람의 자리를 그림처럼 아로새긴 모습이다.
집단의 발전은 천재를 요구하는 법.20세기 바둑의 지평을 넓힌 오청원과 수준을 높인 조훈현은 그 점을 몸으로 보여준다.서봉수가 언젠가 조훈현을 ‘나의 바둑 스승’이라고 토로한 것은 결코 개인만의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 문용직 프로4단 2002.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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