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오로산책
 작가의 말
이 글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자와 협의하지 않은 무단전재는 금합니다.
|
|
묘수와 악수는 맥락으로 결정
|
|
|
|
게으름의 미덕을 높이 찬양하는 필자도 가끔은 집중을 한다.지난 주 필자는 기보 180여개를 포함,닷새만에 원고 600매를 탈고하였다.말 빚을 갚기 위해서 ‘포석의 산책’이란 책을 한 권 써야 되었기 때문이다.빚을 갚은 기분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그 후 사흘은 술만 펐다.
지난 74년 경 필자가 한창 공부할 때 감동했던 포석을 다시 한 번 펼쳐보는 기회도 가졌는데,잊을 수 없는 착상이 하나 있어 독자 여러분과 그 멋진 감각을 나누고자 한다.
기보는 1951년 오청원과 사까다의 치수고치기 10번기 제1국으로 ‘사까다의 흑’.하변을 누르면서 좌변을 삭감하는 흑1의 감각은 아마 누가 두어도 이 장면에선 ‘이 한 수’일 것이다.그러나 백2,4는 어떤가.백2는 그 자체로는 큰 악수(惡手).흑을 굳혀 주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장면에선 백4의 절호점을 일깨운 악수의 호수(好手).좌변과 중앙이 하얗게 부풀어 오른다.
오청원은 과연 천재!백4와 같은 감각을 어떻게 해서 떠올릴 수 있을까?그 자유로운 착상이라니!필자 같은 둔재는 천년을 생각해도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단어를 이럴 때 아니 쓰고 언제 쓸까.백2와 흑3이 이미 교환된 상태였다면,그리고 프로 정상이라면 백4와 같은 모자(帽子)의 감각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백2,흑3의 악수 교환은 프로라면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생각해서도 아니 되는 착상.따라서 백2,4는 오청원만이 할 수 있는 착상.
오청원은 현대의 기성(棋聖)으로서 이제 여든 아홉의 노령.그러나 지금도 ‘21C 포석’을 연구하신다.가까이서 뵌 그 분은 이제 매우 허약한 모습이지만 바둑에 대한 논의가 나오면 눈빛이 금새 생기를 띠신다.말씀은 정정하고.
그의 ‘21C 포석’은 반상의 균형을 잡는 점이 곧 바둑의 조화(調和)를 이루는 착점이요,우리가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좋은 수와 나쁜 수는 그 자체로 결정되지 않는 것.모든 것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50년 전 착상 하나는 그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용직 프로4단 2002.06.12)
|
|
|
|
|
|
|
|
|
|
|
|
.png){kind=lo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