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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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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낚듯 순간을 잡아챈 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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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위안이 된다. 세상은 어지럽지만 세상과의 괴리감을 잠시나마 제공해주는 바둑. 고마운 것. 위안만 될까. 멋진 묘수로 즐거움까지 안겨준다.
금년 필자가 만난 최고의 묘수는 KT배 본선 제1회전 조훈현 9단과 안조영 7단(흑)의 대국에서 나타난 기보의 흑1이 아닐까 한다. 착점 순간 목을 길게 뺀 필자는 지금도 그 순간의 ‘순간됨’을 잊을 수 없다. 한 마디로 허공을 낚듯이 타이밍을 잡아챈 묘수!
어렵고도 미묘한 것이지만 오늘은 이 묘수에 대해 길고 긴 찬사를 늘어놓고 싶다. 먼저 흑1 이후의 변화를 보자. 흑3까지 된 다음 귀에는 흑A 이하 흑E까지 패가 남아 있다. 살려면 백의 가일수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백2를 A에 받으면 아니 되나? 되긴 된다. 그러면 백은 그냥 산다. 그러나 백2를 A에 두면 흑a가 선수. 백은 2,흑B,백D의 수순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백 한 점(촅)이 흑에게 잡히면 흑에겐 c의 단점이 해소된다. 뿐만 아니라 백d,흑3,백e로 끊는 수마저 사라진다. c의 단점이 사라져 흑이 튼튼해졌기 때문이다. 실전에서 흑3은 바로 c의 단점과 백d,흑3,백e를 예방한 점이다.
흑1이 그렇게 대단한가? 그렇다. 값을 매길 수 없다. 바둑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돌과 돌 사이의 공간 못지 않게 수순임을 알려준다. 흑3을 먼저 둔 후 흑1을 두면 백은 A로 받는다. 흑3이 오면 어차피 c의 단점은 사라지니까.
게다가 이 바둑은 속기. 흑1은 1분 안에 두어졌다. 1분 안에 이런 묘수를 둔다고? 시간이 주어진 프로라 할지라도 흑1은 그야말로 발견하기 어려운 수. 400년의 묘수를 담은 ‘운명의 한 수,88선(選)’이라는 책도 있지만 안7단의 흑1은 그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묘수 이상의 귀수(鬼手)라고 여겨진다.
참으로 타이밍을 짚어낸 절묘한 착수. 필자는 탄식을 금치 못한다. 그렇지만 흑1의 값어치를 깊이 인정하고 또 감탄하는 사람은 따로 있을 듯하다. 그는 바로 흑1을 당한 조9단이 아닐까. 다행히 우리는 안다. 그 묘수의 아름다움은 두 대국자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도 열려 있음을.
세상은 어지럽지만 위안은 있다. 작은 것에 위안이 존재한다.
(문용직 프로4단 2002.12.10,)
○... 관련기보는 2002년 9월 11일에 열린 제2기 KT배 마스터스 프로기전 64강전의 기보, 안조영 7단과 조훈현 9단의 대국으로 조훈현 9단이 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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