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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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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는 오전과 다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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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3월 30일) - 오후는 오전과 다른 세계
오후는 오전과 다르다.
너무나 당연한 이 말.
그러나 프로들에게 이 말은 큰 의미를 갖는다.
바둑은 리듬이 섬세한 게임.
승부를 가르는 악수와 완착은 점심시간 후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점심시간은 반상과는 또 다른 세계. 그 세계에서 기사들은 길을 잃는다. 반상의 논리를 잃는다. 반상의 돌이 전해주는 감각을 잃는다.
1시간. 1시간의 점심시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封手가 누구에게 유리한가? 이틀걸이 대국에서 답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 그러나 대답만 있고, 정답은 찾지 못한 질문.
실전1
점심시간 전 마지막으로 둔 수는 흑57이었다.
10분 57초.
실전2
이 국수는 돌아왔다.
그는 자리에 앉자 7분 46초를 생각했다.
아니다. 과연 그랬던가? 그는 백58을 생각했을까?
점심이 끝날 즈음, 사진기자들의 요청이 있었다. 10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 정도의 시간으로는 점심시간 후의 대국실을, 대국자를 앵글로 잡기에는 너무나 촉박한 시간이라고. 자기 혼자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신문사, TV, 월간 잡지, CH까지 모두가 순간을 잡는데 정신이 없는 시간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사진의 눈으로 보면, 좋은 앵글이 잡히는 좋은 자리가 따로 있는데, 그 자리는 서로가 잘 알고 있는 자리고, 따라서 10분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나는 어떨까.
나는 입회인이다.
좀 생각해보지요.
대국장에 들어섰다.
저, 미안합니다.
대국자도 이해 바랍니다.
5분만 드리겠습니다.
5분간 두 대국자는 반상을 보면서도 사진기자의 注視 또한 피할 수 없었다.
난감한 일이다.
그래, 세상 일이란 다 이런 거다. 저마다 보는 눈이 다르고 이해가 다르다.
도전기라는 중요한 대국이지만, 그렇다해도 이 대국을 대국자의 배제적 권한 만이 지배할 수 있는 그런 것으로 보아서도 안 된다. 프로들도 시장경제 하에서, 그 조건에 맞추어 생활을 하여야 한다.
5분은 그렇게 지나갔다.
7분 46초.
5분을 뺄까.
이 국수는 호흡을 가다듬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했을까.
아마도 점심시간, 아니 그 이전에 답은 가졌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라도 가졌을 것이다.
5분간 사진의 초점이 되는 것도 반드시 대국의 내용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인식의 굴절을 겪어야만 한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사실… 고요는 부담될 지도 모른다.
실전3
돌이 두어 개 놓여졌다.
백58, 7분 46초.
흑59 1분 37초.
백60, 3분 45초.
그래, 오후가 시작되었구나.
반상의 논리가 이어지고 있구나.
백60을 놓을 때의 이 국수의 안색은 평온했고,
그 이전, 흑59를 놓을 때의 도전자 최철한의 안색도 편했다.
다만, 백58을 착점할 때의 이 국수의 표정에서는, 얼굴색이 약간은 상기되었다는 느낌이 왔다.
그래, 오후가 시작되는 거다.
대국실엔 정적이 감돈다.
나는 나가는 거다.
대국실 밖으로 나가는 거다.
반상은 여전히 나에게도 맴돌겠지만, 그래도 나는 나가는 거다.
대국실 밖으로 나갈 때의 그 홀가분함.
바둑이 끝날 때의 홀가분함과는 뭔가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한 순간을 잘 지냈다는 맘이 찾아 왔다.
일고여덟 살 쯤 되었을 때였던가. 늦봄이었을까, 가을이었을까.
마루에서 자다가 깨어나니 딴 세상이었다. 그래, 급히 학교 가야지, 하고는 눈을 크게 뜨는데….
저녁이었다. 한 세상이 훌쩍 지나간 느낌이 찾아왔다. 잠시였을까. 분명 나에게 내 옆에 머물렀는데.
해가 막 지고 있었다. 그 아득하고도 낮은 빛에 둘러싸인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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