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성’이란 말이 있다.

  물건의 용도에도 쓰이고 있지만, 보통은 사람의 인격을 가늠하는 말이다. 주로 이중적인 인격을 뜻한다. 특히 지성인으로서는 사형선고와 같은 말이요, 인간적으로도 듣기 싫은 소리다. 

 자칫 일생을 쌓아온 자신의 인격이 일시에 무너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격은 지식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지식은 밤을 새워 얻을 수도 있지만 일시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격형성은 오랜 세월을 요하지만 단번에 무너지기도 한다. 

 이쪽에선 이런 말을, 저쪽에선 저런 태도를 보이는 이중성은 현대 지식인이 가장 부끄럽게 여기는 부분이기도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이중성을 너 나 할 것 없이 알게, 모르게 구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매사가 다 그렇지만 이중성에도 이유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기주의이다. 이기주의는 자기중심의 생활방식이다. 타인의 이익과 행복은 오히려 시기의 대상일 뿐이다. 철저하게 남의 도움으로 살면서도 자신만 생각한다니 우선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밖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기심을 지탄하면서도 그것에 매몰되어 사는 모순을 연출하는 것도 우리들이다.

 평소에는 세상 정의가 다 죽었다고 거품을 물다가도, 자신의 문제와 만나게 되면 자기중심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이럴 땐 내 이익이 해답이요, 정의이다. 그래서 이기심은 타고난 본능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옳다는 얘기가 아니라 고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때에도 이기심만 빼 버리면, 매사에 문제 자체를 중심에 두게 되고, 문제 자체가 중심에 서면 옳고 정확한 해결방법이 보이게 된다. 이 때에는 이중성이 나타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해법을 나와 결부시키기만 하면 탈이 나기 시작한다.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탈은 꼬리를 물게 된다. 그래서 이기주의가 근절되지 않는 한, 이런 이중성은 필연적이고, 사방에서 일어나게 된다. 욕심, 체면, 인연, 그리고 쉽고 어려운 난이도들도 다 이중성을 부추기는 주요 인자들이다.

 그런데 개인의 문제는 개인으로 끝나지만 이것들이 단체나 국가조직에 침투되면 탈이 크다. 구성원 전체가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피해도 악성이다. 조직의 발전을 늦추는 정도는 피해가 아주 양호한 편이다. 아예 정지시켜 버리거나, 기어코 망하는 길로 접어들게 하고 만다.

 이처럼 단체가 와해되고 국가가 뒤뚱거리는 것도 사익과 공익의 충돌 때문이다. 다시 풀면 개인적인 이익과 구성원으로서의 공적 역할이 충돌했다는 얘기다. 인간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구성원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하는 것은 요구가 아니라 책임이요, 윤리이다. 이를 다하지 못할 거면 자리를 비켜주어야 옳다.

 을사오적이라는 역사적 산물도 자신들의 책임과 윤리를 피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오적 정도로 그쳤지만 현대에 와서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지식인들이 너무 많아졌고, 또 이중성으로 포장되어있어 쉽게 구분 할 수도 없다. 마치 우리사회에 몰래 침투한 간첩 같은 존재들이 되었다. 그러니까 답안지는 늘 공익이지만, 실제로는 사익을, 그것도 은밀하게 추구하고 있다.

 만약, 국가가 병이 들어 사회가 어지러워진다면 구성원들의 이중성 때문이라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가 않다. 이래서 잘사는 나라, 건강한 나라의 국민들이 부러움을 사고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타고난 인간의 약점도 이성으로 절제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곳에도 약점은 있지만 그래도 선진국이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켜온 나라가 한둘이 아닌 이 지구상에서, 겨우 200년 조금 넘은 미국이란 신생국이 당당하게 세계의 경찰노릇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 특유의 도전정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안으로는 바로 이기주의의 한계를 명확히 그어 놓은 사회적 규범이 그런 대로 지켜지고 있는 까닭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많은 민족과 다양한 문화를 안고 있으면서도 어느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국가의 질서가 훌륭히 지켜지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육의 교육방향(컨셉)이 무엇인지 알지도 들은 바도 없지만, 미국 초등교육의 교육방향이 “질서”에 있다는 얘기는 오늘의 미국이 된 이유를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는 듯하고, 고개도 끄덕이게 된다.   

 진실로 나를 보호해주는 국가를 사랑하고, 또 같은 세대를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의 모든 인류를 사랑한다면 매사에 자신을 우선하는 이기심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를 우선하는 이타심만이 해답이 아닐까 싶다. 바로 하나님의 가르침이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평화를 외치면서도 앞장서 평화를 깨는 종교전쟁도, 우리들을 양분시킨체 반세기를 끌고 온, 이 지루한 이념전쟁도 모두 넘어 설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아닐까 싶다. 수년전 도농복합도시를 반대해서 일부지역이 통합되지 못한 이유도, 이처럼 문제 자체보다는 자신들과 결부시켜본 지도층의 사익이 끼어든 까닭이라고 말들이 많았다.  

 인간이 서로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라면, 이를 외면하는 것은, 정말로 염치없고 부끄러운 일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면서 보여주는 이중성은 그래도 염치는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주제이면서도 이중성으로 포장하여 모두를 기만하는 것은 더없이 질 나쁜 죄악이요,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악업의 축적이다.

 악업이 자꾸 쌓인다니 내가 더 걱정이다. 나 또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업인과보의 섭리를 바로보고, 흩어진 정신을 수습하여, 내 악업을 미리 풀어가는 지혜와 의지와 용기를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할지 답답하기만 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