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갈수록 세월의 흐름이 빨라진다고들 한다.

30대는 30키로로 가고 70대는 70키로로 간다고 하는 말들이 그 말이 아닌가 싶다. 참으로 맞는 말인 것 같다. 누군가가 세대별로 세월의 흐름을 잘도 비유했구나 싶다.  

 사실 나도 젊었을 때에는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를 몰랐다. 정확하게는 몰랐던 것이 아니라 너무 더디구나, 했다. 시간이 빨리 흘러 내 인생의 끝 간 데를 빨리 보고 싶어 한 것 같기만 했다. 그것도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을 뿐이다.

 그러나 막상 퇴직을 하고보니 세월의 흐름이 눈에 보이듯 하루가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너무도 빠르게 느껴졌다. 좀 천천히 갔으면 하는 생각에, 느리다고 안달하던 어린시절을 떠올려 실소를 머금기도 했다. 

 정말이지 어디 세월의 흐름이 세대에 따라 각기 다른 속도로 흐르겠는가마는 흐름의 느낌이 다르다는 얘기를 그리 표현한 것 같다. 다시 말한다면 세월의 흐름이 늦고 빠른 게 아니고 그 흐름을 타고 있는 인간의 변화가 늦고 빠를 뿐이라는 그런 뜻인가 싶다.

 결국 이 흐름으로 인하여 세상만물을 다 삭여버리고 말, 이 변화의 속도가, 이를테면 노후가 되어 보내는 하루는 젊은 시절의 1년과 맞먹는다는 것이고 그것을 삭아가는 몸으로 먼저 실감하게 된다는 얘기다.

 청춘을 벗어난 마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쪼그라들고 몸 또한 곰삭아 병과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니까 노후가 되어 하루 밤을 자고나도 젊은 시절, 1년의 변화가 와 있다는 얘기다. 이것도 사람에 따라 하루가 1년이 될 수도 있고, 하루가 10년이 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게 노후들의 삶이요, 세월이다. 그래서 노후는 남아있는 세월이 짧아 보이고, 그 짧아 보인 세월조차도 안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밤새 안녕하신가? 라는 인사말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70대가 70키로로 간다는 말 자체에, 빨리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다는 노후들의 정서다. 빨리 간다고 좋아서 생긴 말이 아니라, 너무 빨리 간다는 아쉬움 때문에 생긴 말 같아서이다.

 그런데 별로 할일도 없는 노후들이, 할일 많은 젊은이들 보다 흐르는 세월을 더 아쉬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괜찮은 건지, 부끄러움인지 알 수가 없다. 딱히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행일 수도 있으나, 욕심 같은 미련 때문이라면 부끄러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하루가 다르게 늙고 쇠약해져 가는 몸의 건강을 아쉬워하는 것은 노후가 되어서야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또한 오래 살고도 싶지만, 내 세월도 예외 없이 금방 한 해를 돌려놓고 만다.

 더구나 새해를 맞이하는 몸은 부푼 감정을 품기 보다는 다시 올 새해의 봄을 맞이할 자신이 별로인데서 한숨으로 채워놓고 있다. 뭔가 허전하고 쓸쓸함을 숨길 수가 없다. 바로 이것이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도 싶다. 밑지고 팔았다는 상인들보다 노후들이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이 더 큰 거짓말이라는 얘기가 생각난다.   

 어쨌든 슬픈 일이다. 오죽했으면 늙기가 서럽다는 노래까지 생겼는가? 그러나 한편으론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일 특별히 할일 없는 노후가 되어서 세월마저 늦게 간다면 어떻게 이 길고 긴 세월을 참고 견딜 수 있을까? 뒤척이며 잠 못 이루고 뜬 눈으로 지새운 밤을 한번 떠올려 보아도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건, 밤이 아니라 해를 거듭하며 곰삭은 몸이 지탱해야하는 노후의 나날이다.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할까? 사는 것 자체가 아픔이요, 고통일 수도 있다. 그렇잖아도 고해라고 하는 인생이 그나마 노후가 되어서는, 막장으로 몰렸다고도 할 수 있으니 상상만으로도 해답을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정말 세상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렸나 보다.

 70키로로 간다고 쓸쓸해하기보다는 오히려 30키로로 지척거리지 않음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생각하기 나름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마음하나 바꾸니 고통이 오히려 기쁨으로 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리되면 30키로의 30대보다 70키로의 70대가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이런 걸 일체 유심 조(一切 唯心 造)라고 했던가?

 신라의 원효가 당나라 유학을 떠나다가, 무수한 주검들이 나딩구는 전쟁터에서 노숙했을 때, 밤새 잠 못 이루다가 깨쳤다는 깨달음이다. 땅 막과 무덤이 둘이 아닌데, 한쪽은 편했고, 한쪽은 뒤숭숭했던 데서 현실세계는 오직 마음이요, 모든 존재는 오직 인식인 것을 깨닫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했다던 진리, 일체 유심 조. 

 이게 바로 70대를 30대보다 더 행복하게 만든 진실이요, 마음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