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멤논의 거상
합셑수트 여왕의 장제전에서 신전으로 가는 길목에 맴논의 거상이 있다.
맴논의 거상은 밭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거대한 석상이다. 트로이에서 살해당한 그리스의 영웅 맴논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18왕조의 아멘호테프3세의 조상이다. 그는 자신의 신전 입구에 자신의 조상을 세워놓은 것이라는데 신전은 사라지고 석상만 남아있다.
당초에는 3개였으나 지금은 2개만 남아있다고 하는데, 앉아있는 거상의 높이가 자그마치 20미터에 발의 길이만 해도 2미터나 된다고 한다. 이번에 느낀 이집트 문화의 특징 중 하나가 돌 문화라는 것이다. 또 하나같이 크고, 웅장했으며, 통돌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거상의 무게 또한 하나가 720톤이나 나간다니 캐내고, 깎고, 옮기고, 또 세우기까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도 할 수 있을까 싶은데 하물며 수천 년 전의 일임에랴. 또 아멘호테프3세의 조상에 맴논의 이름이 붙은 것은 매일 아침 햇볕이 비치기 시작하면서 들리는 거상의 구슬픈 울음소리 때문이라 했다.
기원전 27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균열이 생긴 거상은 해가 뜰 때, 일교차에 의해 석상의 갈라진 부분에서 나오는 진동 소리가 바람에 실려, 마치 맴논이 자신의 어머니인 여명의 여신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붙여졌다고 하는데, 거상을 보수한 이후부터 소리가 멈추었다고 하니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그리스의 영웅 맴논은 여명의 여신 에오스의 아들이다.
ㅇ 세계 최대의 신전 카르낙과 룩소르 신전
이집트의 마지막 코스인 카르낙 신전을 찾았다.
신전은 파라오의 신앙이다. 교인들이 교회를 지어 예배드리고, 스님들이 절을 짓고 수도하듯이 파라오는 신전을 짓고 그곳에서 신탁을 받아 파라오의 힘과 통치의 지혜를 얻는다. 그래서 왕들마다 자신을 수호하는 신전을 짓는다. 곧 자신의 신전이다.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영광이라 하여 신전을 확장하거나 새로 짓는다.
신왕국시대의 18왕조 아멘호테프2세가 짓기 시작한 카르낙 신전은 30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시대까지 무려 1,500년간이나 이어져, 700미터의 폭에 2키로미터까지 확장된 세계 최고, 최대의 신전이 되었다. 남아있는 시설물은 거대한 석상과 다주식 홀, 나일 강의 수위를 재던 연못 그리고 사각기둥의 오벨리스크와 벽화가 전부지만, 그 규모와 정교함에는 또 한번 놀란다.
신전 안에 원형기둥이 서있는 다주식 홀은 가로 53미터에 세로 102미터의 넓은 면적으로, 여기에 밑 둘레 15미터, 높이 23미터의 대형 돌기둥들이 자그마치 134개나 널어 서있는 데는 여지없이 압도당한다. 더구나 신전마다 입구에 버티고 서있는 오벨리스크까지 더하면 숨까지 멎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오벨리스크는 신에게 바치는 헌상품으로 신전입구 양쪽에 세워놓은 사각의 돌기둥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져서 끝에는 피라밋 모형으로 마무리되어 끝이 뾰족하다. 그래서 그리스어로는 ‘작은 꼬챙이’란 뜻이요, 아랍어(미셀라)로는 ‘큰 천을 깁는 바늘’이란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바늘이니 꼬챙이니 하니, 작은 것 같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자그마치 22미터짜리에서부터 32미터까지 있고 미완성품으로는 41미터짜리도 있다고 한다. 41미터짜리는 무려1,168톤이나 나간다고 하니, 수백 톤이나 되는 완성품들은 어떻게 운반하고 또 세웠을까? 그 기술이 놀라울 뿐이다. 또한 모두가 다 한 개의 통돌인데다, 우뚝 솟은 웅장함과 기품 있는 자태, 그리고 사면에 신성문자와 그림으로 깊게 음각한, 너무도 깨끗한 문양의 아름다움은 돌의 붉은빛과 어울려 강열한 인상을 준다.
기원전 2,000년 이전부터 제작되었다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의 일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원시적인 도구와 당시의 기술을 상상해 보면 이집트 문명이 남긴 유적 중 또 하나의 불가사이를 보는 것만 같다. 힘들여 기둥을 세우는 의미와 같이 이 기둥들에서 정말 고대 이집트인들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이집트의 대표적 유물이요, 문화재인 이 오벨리스크는 현재 런던, 파리, 뉴욕, 이스탄불, 로마에서도 볼 수 있는데,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있는 것과 뉴욕에 있는 것은 19세기에 와서 선물로 공식 반출된 것이라 하니 나머지는 침략시절 약탈해 간 것이 아닌가 싶다. 로마에는 이런 오벨리스크가 무려 13개나 된다니 할 말이 없다.
더구나 귀중한 문화재를 외국에 공식 선물한 이집트인들의 뱃심이나 무지 또한 놀라울 뿐이다. 더구나 뉴욕에 보낸 것은 1869년 수에즈운하 개통씩 때 미국의 보은(?)에 보답하는 뜻으로 선물한 것이라고 하니, 한점의 문화재보다는 이집트국민들의 생활수단이 당시에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치 60년대에 숙명적인 보릿고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온 국민이 새마을사업과 함께 경제기획 5개년계획에 전력투구할 때, 국고는 바닥이 났고 미국은 못준다 하여 대안을 찾지 못해, 결국 눈물을 삼키며 대일 청구권까지 헐값으로 팔아야만 했다는 우리의 슬픈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카르낙 신전에서 3키로 떨어진 나일 강가에는 룩소르 신전이 있다. 카르낙 신전이 우주 창조의 신 아몬과 태양신 라가 결합한 아몬라를 모신 신전이라면, 룩소르 신전은 18왕조의 아멘호테프3세가 테베(룩소르의 옛 명칭)의 3신이라 불리는 아몬라, 그의 아내 무트, 아들 콘수를 위해 건설한 신전이다.
이 신전 또한 투탕카문, 호렘헵, 세티1세, 람세스2세, 세티2세 등 19왕조의 파라오들 자취까지 남긴 신전이고 보면 카르낙 신전처럼 세월을 두고 지속적으로 확장되어온 신전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두 신전이 3키로나 떨어져 있지만 당시에는 두 신전이 인간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 통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최근 한 문화재 발굴 작업으로 뒤늦게 확인되었다고 하니, 이집트문화의 실체 확인은 아직도 멀었구나 싶다.
그리고 이 신전은 오랜 기간을 두고 확장되어 왔기에, 여러 세력권의 통치가 불가피했고, 바뀐 통치세력은 신전을 하나의 역사유물로 보기보다는 자신들의 문화로 채색하는 작위가 우선 되어, 파라오의 신전에 기독교 문화의 흔적과 이슬람 문화의 흔적들이 함께 남아있는 것이 이 신전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집트 신들을 모시는 신전의 천정과 벽체에는 기독교 세력이 지배하였을 때에 해 놓은 예수님의 말씀이나 그림이 조각되어 있고, 무슬림의 세력에 의해 지배되었을 때에 증축해 놓은 모스크가 신전안의 기존건축물 위에 아직도 버젓이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3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3일간 돌아본 이집트에서는 놀람의 연속이었다. 물론 미지의 여행이 다 그렇겠지만 그러나 뭔가가 다른 것 같았다.
우선 큰 것에 먼저 놀라고 그리고 돌의 문명에 또 한번 놀란다. 이 거대한 돌문명의 불가사이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구나 했다.
사막의 한복판을 흐르는 나일 강에서도 놀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데임즈 강이나 라인 강이 아니었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강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생명줄이었다. 나일 강이 이집트요, 이집트가 곧 나일 강이었다. 비가 오지 않는다 해도 물 걱정이 없는 나라다. 그래서인지 나일 강은 늘 연안을 꽉 메우고 흐르고 있다.
또 이집트엔 뜻밖에도 기독교의 성지가 많은 곳이기도 했다. 예수피난교회와 모세기념교회가 그것이다. 가보진 않았지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듣게 된 불 떨기나무도 이곳에 있다고 하고, 이미 19세기에 이집트 정부에서 말이나 낙타를 타고 오를 수 있도록 탐방로를 개발해 놓았다는, 해발 2,250미터의 호렙산도 이곳에 있다고 한다. 호렙산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이기에 더 유명하다.
또한 그리스신화나 로마신화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를 은근히 놀라게 한 이집트신화가 이미 저 앞에 있었다는 것도 이번에 비로소 알았고, 말로만 듣던 이집트의 위대한 문명을 대하고는, 놀라기도 했지만 그보다 몰락한 후손들을 보는 듯해 안타까움이 더 크기도 했다.
높은 문맹율과 늘어진 국민성 그리고 풍부한 자원에 비해 낮은GNP에서는 위대한 국민성을 일깨우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듯한 국가지도자들의 생각과 애로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했고, 내세에 비중을 두고 현실을 포기한 듯한 이슬람교도들의 사는 모습은 답답하기만 했다.
관광객에게 히잡(여인들이 얼굴을 감싸는 길 다란 수건)을 사라며 “원 달라”라고 외치는 지금의 이집트는 이슬람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국가재정의 40%를 차지하는 관광수입 외에 막대한 운하이용료와 해외근로자들의 외화벌이 등이 국가재정의 주요재원이라 하니 근본이 탄탄하여 희망이 보인다.
미묘하게 공존하는 현상도 볼 수가 있었다. 유럽문화의 두 흐름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그것이었고, 똑같이 유일신을 고집하면서 배타성이 강한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도 그랬으며, 시내 한복판에서도 고급승용차가, 노새가 이끄는 수레에 막혀 주춤거리듯 과거와 현대가 유독히 먼 거리를 두고도 불평 없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차라리 이집트의 낭만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겨놓은 문명의 위대함 탓인가,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이집트는 역시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불덩이를 가슴에 품고 은둔하는 은둔자의 숨은 열정도 느꼈고, 마치 야성을 잃은 맹수처럼 어리석음과 무서움을 함께 느끼게도 했다.
그래서 인가, 이대로 떠나기가 아쉽기만 했다. 무엇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일 강의 물을 마신 사람은 꼭 다시 돌아온다고 했는가? 나 또한 다시 오고 싶은 생각에 휩쌓인 채 이집트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마치고 떠나서 시원한 게 아니라 뭔가 아쉽다는 생각만 간절하다. 결국 이집트는 무한한 매력의 나라 였구나 했다.
( 지루한 긴 얘기 읽으시느라 고생많으셨고, 또 고맙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틀린부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저 동내 사랑방에 둘러 앉아, 소주잔 마주한체, 여행 다녀온 이웃에게 듣는 얘기로 가볍게 이해해 주시기 바라며, 아직 가보지않은 분들에게는 그나마 그쪽 여행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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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당근돼지
달선공팔
페르난도
선비만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