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되면서부터 근무한 관리원이 하나 있다. 유일하게도 벌써 14년째 아파트와 함께 호흡해온 우리 아파트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아파트 관리원이 이렇게 오래 근무하는 예는 기적에 가깝다. 관리원에 대한 대우도 그리 넉넉하지 않은데다, 장래성은 물론 공직자들처럼 무슨 신분보장 같은 것도 없으니, 젊은 사람이 천직으로 믿고 일생을 의탁하기에는 선뜻 내키지 않는 그런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분은 14년 전 근무를 시작하던 날부터 지금까지 출퇴근 시간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파트를 향해 절을 하면서 감사해 하고 있다고 한다. “네 덕분에 나와 우리가족이 길거리에 나앉지도 않고, 굶주리지도 않았으며, 또 아이들 공부도 시킬 수가 있었다.” 면서.

 저녁을 먹으면서 털어 놓은 그의 사연은 계속되었다.

 “이 아파트는 저의 구세주였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가까스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시골 풍습에 따라 바로 가정부터 꾸리다 보니 제겐 우선 먹고 사는 게 문제였지요. 땅이 없어 농사도 지을 수가 없어, 전 재산을 처분하여 축산을 시작했으나 무슨 파동이 일어나 망하는 바람에 수천만원의 빚만 지고, 이곳으로 흘러나와, 겨우 얻은 게 바로 이 직장이었습니다.”  

 “지금 만 14년이 되었습니다만, 그때는 무일푼에 빚까지 졌으니 정말 산다는 것이 지옥 그 자체였지요.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열심히만 일하면 쫓겨나지 않고 한달에 32만원이라는 월급이 꼬박꼬박 나와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금은, 수천만원의 빚도 다 청산했고, 집도 전세로 바꾸어 살고 있으며, 두 남매를 대학물도 먹일 수 있어 부모로서의 체면도 간신히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 바로 이 아파트였기에 지금도 아침 일찍 출근해서, 그리고 저녁 늦게 퇴근할 때 아무도 몰래 아파트를 보고 감사의 절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바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하루가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고, 세상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정말 길을 가다가 공매를 맞아도 웃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요즘 세상, 만나보기도 쉽지 않고, 들어보기도 쉽지 않은 그런 충격이었다. 참으로 정직하게 살아왔고, 너무도 근면했고, 또 검소하게 살아온 삶이었다. 그래서 보다 넉넉한 하나님의 배려가 정말로 아쉬운 것 같은 그런 안타까움이 가득한 얘기였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살아가는 다급한 현실이란 거울에 비쳐본다면, 너무도 신선하고 너무도 진솔해서 가슴이 다 아려왔고, 그리고 나를 더 없이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나 또한 내 모든 일에 진정으로 감사해 한다면서도 늘 무늬만 그럴 사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불만은 속에다 감춘 채 입으로만 감사하다 했고, 마음은 몰래 자위하기에만 바빴다. 태워 없애지 못한 불만과 주변을 보고 억지로 얻어내는 위안은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진정한 만족이 아니었다. 남아있었던 불만은 욕심이었고, 자위하면서 참아온 만족은 위선이었다. 

 죽어 있기보다 살아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며, 세상을 환이 내다보고 온갖 소리를 들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들과 담소까지 즐기며 살 수 있다는 게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우리는 어릴 적엔 이해되지 않던 일들이 커가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소위 철이 드는 까닭이다. 나이가 들면서 겪어온 경험과 견문을 통해서 세상 이치를 조금씩 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에는 사고가 나면 속상해 하기보다는 그만하면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모습을 이해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계산했기에 멀쩡할 때보다 사고 이후를 감사해야 하는지를 옛날에는 정말 몰랐다.

 운수가 사나워 죽을 고비를 넘겼을 때는 그나마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에 더 감사해 했고, 한쪽 눈을 잃었을 땐 한쪽 눈이 멀쩡함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더 나빴을 정황보다는 낫기 때문이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마음은 우러나는 진실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만 했다. 어떤 경우에도, 변덕도 없고 흔들리지도 않는 것은, 그저 소박한 욕심과 진솔한 마음뿐이기 때문이다.

 용돈밖에 안 되는 봉급을 받아가면서도 지금껏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그는 어려웠던 시절이란 거울로 인해 그의 가슴에 소박한 마음을 꾸준히 심어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전세로 살면서 내 집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월세로 살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겼고, 4년제를 못 보낸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전문대학이라도 보낸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한다.

 모두가 소박한, 욕심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행복이었고, 또한 근면하고 소박한 이런 마음들이 바로 행복의 샘이 된 샘이다. 

 사실, 인생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순간순간의 삶이 이어진 것이 인생이라 한다면 계속 밀려오는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는가? 쉬지 않고 흐르기만 하는 순간들 위에서 어찌 지나온 날과 비교하고, 남과 비교하는 따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그 시간, 살아 있기에 맡게 된 삶의 유일한 배역에 그저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도 늘 부족할 것만 같은 것은 한 번 흘러가고 마는 그 순간들이 가장 소중한 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이 아닐까 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