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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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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랑의 감정이 사라진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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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사라진 것을 아는 것은 괴로운 일일까. 아니면 가벼운 일일까.
대만의 저우쥔신 9단과 중국의 후야오위 9단의 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1국이 열린 지난 3월의 안국동 서머셋 호텔. 나는 안국동의 정취를 사랑하기에 산책하는 마음으로 검토실에 들렀다. 검토실은 한산했다. 그러나 덕분에 매우 편안했는데, 그 기분 탓인지 마음에 감정이 하나 사라진 것을 느꼈다. 옛사랑의 감정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바둑 칼럼에 무슨 사랑 얘기냐고? 하하. 사실은 이런 것이었다. 들어 주실련지? 먼저 반상을 보면서 해설자의 멘트 하나 듣자. “흑1은 확실하게 살아두려는 겁니다. 그러나 아깝습니다. 백을 두텁게 굳혀주는 악수입니다.” 그랬다. 악수였다. 그러나 바둑을 승리로 이끈 저우 9단의 생동하는 감각이었다.
그랬다. 흑1이 좋았다. 비록 a로 밀고 나가는 수를 없앴지만 지금은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백A 흑B 백C일 때 D를 둘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백이 E로 밀어오더라도 흑F로 삶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 흑1은 실로 착상하기 힘든 수였다. 왜 그러한가. 대국자의 실력이 높기 때문이다.
바둑이 적당히 강할 때는 저 흑1을 착상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실력이 강해지면 떠오르지 않는다. 프로의 수준이 되면 두터움이 무엇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알아도 깊게 안다. 두터움은 두려운 것. 그러므로 상대를 두텁고 튼튼하게 해주는 감각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저 흑1 착상이 프로들에게는 거의 나오기 힘든 이유다.
그래서일까. 오랜 만에 들어보는 옛사랑의 노래와도 같은 기분을 안겨주는 저 수순을 보면서 생각했다. 궁금했다. 사라진 시간이 궁금했다. 옆엔 C 9단이 있어 나의 감정도 들어주었다. 아, 우리도 사랑할 때가 있었는데 말야. 저런 감각을 환하게 가졌을 때가 있었는데 말야.
물론 누군들 자신의 하나가 사라진 것을 즐거워할까. 그러나 편했으니 누구나 그런 이해와 감정을 가질 때가 있는 것일까. 3월의 한 때. 그날의 늦은 오후에 나는 저 국면을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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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에 길들면 고추장 맛을 잊게 되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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