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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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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긍심이 안겨준 넓은 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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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창하오의 바둑을 보았다. 예전과는 비할 수 없이 자신만만한 세계. 상대가 중국 1위 구리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상을 드높고 드넓게 구상하는 그의 안목이 크게 돋보이는 바둑.
기보를 보자. 우하귀 백 넉점(△)의 수습이 초점인데 놀랍게도 창하오는 저 멀리 백1 붙이고 백3 젖혔다. 그 감각! 흑4는 정수로, 흑a 백b 교환해도 다시 4에 이어야 한다. 백5 끊어서 석점으로 버리는 수법도 멋지다. 자신감 없으면 둘 수 없는 수법. 왜 이렇게 버리느냐? 백A 흑B 백C 흑D까지는 백의 선수. 그러면 포도송이 흑의 공배가 5개지만 버림돌인 백 석점도 3개라, 하변 백의 탈출에 보탬이 된다. 백C 흑D 백E만 되어도 우변 흑의 공배가 메워져 막을 수 없다. 백은 탈출과 백c 흑d 백e 사는 수를 맞보아 안전. 백13도 과감한 시도. 주변 돌이 가볍다는 것을 배경으로 한 예리한 일격이다. 중앙이 환하게 밝아온다.
참으로 시원한 착상이고 수순이다. 아마도 이번에 이창호를 이기는 과정에서 반상이 넓어진 걸까? 그 동안 창하오는 이런 바둑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많은 기사들이 라이벌에게 져서 뒤로 물러난다. 자꾸만 지면 왜소해 보이는 자신을 감당하기 힘들고 심리적으로 추락한다. 그렇다. 상금도 명예도 중요하지만 프로에게는 그 못지않은 것이 자긍심.
지난 삼성화재배에서 이창호를 이긴 창하오는 자신의 바둑에 자긍심을 새삼 얻었으리. 그 동안 그에게 수없이 많은 패배와 인고의 시간을 안겨주었던 이창호를 극복한 그에게 주어진 것은 중국의 긍지를 대표한다는 자부. 자괴감을 극복해낸 자신에 대한 믿음. 바로 그것이었으리.
고맙게도 그의 자부는 반상에도 투영된다. 조금 전 보았던 그 바둑은 실로 승자의 벅찬 성취감 없이는 두기 힘든 것. 그렇다. 반상에서, 넘어졌다 일어서는 승자의 자긍심은 표현의 힘을 얻는다. 자신이 본 넓은 세상을 재현하는 그 힘. 그래, 일어선 자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 어둠을 걸어 하늘을 본 기사만이 반상을 담대하고도 넓게 조감하는 힘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승패는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일. 세상을 멀리 바라볼 필요가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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