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끝냈다 - 아쉬움과 희망

I. 아쉬움은 즐거움

즐겁다.
그럭저럭 끝내서 즐겁다. 아쉬워서 즐겁다.
부족할 때 끝내야 한다.

애초에 언어에 대한 관심을 단초로 해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끝나간다. 오늘로 끝난다. 생각했었지만 미처 다루지 못한 것도 있었는데 다시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니, 그것은 안목 밖의 주제였을 것으로 보고 그리 미룬다.

잠깐 돌아봄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강조한 바를 가볍게 정리해보겠다.
두서는 없다.

A) 언어와 관련해서

1. 반상의 언어는 인간의 위상학적 토대에 기초한 몸짓언어가 기초로, 그것은 오늘날 은유로 불리는 것이다.

2. 바둑은 인간이 놀이의 하나로 만든 것이다. 그것은 바둑문화, 그 영역을 이룰 정도로 바둑만의 세계가 제시하는 감성적 질감을 상징적으로 안겨준다.

3. 의식은 언어의 산물. 적어도 언어 없이 의식 없다. 그러므로 반상의 은유적 언어를 전제할 때 수법은 내면의 저항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그 하나의 예.

4. 반상 언어가 은유적이라면, 바둑의 재능은 다른 안목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 시적(詩的) 재능을 가진 사람은 반상에 반응이 남다를 수 있을 것이다.

5. 반상 언어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반상의 풍요로움을 끌어내는데 바람직하다.

6. 맥의 정의는 다의적이다. 다양한 문화적 요인이 반상에 녹아있고 또 상징적 의미의 세계와 의미없는 기호의 세계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7. 모호한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 의미를 찾아 자신을 돌아볼 때 세계는 상징으로 그 기초를 이룬다. 바둑에서도 그 상징의 세계는 주로 언어를 통해 알려지고 또 감정의 질감을 이루어준다.

B) 반상의 조건, 그 격자무늬와 관련해서

1. 반상은 상상력이 강하게 요동하는 세계이다. 모호한 세상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기본적인 방식이 상상이기 때문이다.

2. 반상은 삶의 본능이 살아있는 동(動)적인 세계로서 고요한 측면의 질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위상학적인 공간감 속에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 반상에서도 - 운명.

3. 증명, 형상, 이론, 그 구별이 필요하다. 돌의 조건이 어느 정도 행위의 자유를 제한하느냐? 그에 대한 반응인 것이다.

4. 돌 중심 사고냐, 집 중심 사고냐? 그와 같이 문화가 다르면 수법의 발전방향도 다르다. 예컨대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 아래에서는 연역적 추론의 힘이 강조되며, 그 결과 포석의 이론이 발전에 힘을 얻는다.

5. 장문은 상하좌우(上下左右)의 기본적 조건에 잘 부합하기에 가장 강력한 수법 중의 하나가 된다. 그 결과 장문의 은유는 발전하고 있다. 장문 은유는 바둑이 나아갈 길의 하나를 암시하고 있다.

6. 행마는 그 간격이 넓어지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덤이 그 영향 요소 중의 하나이듯이, 승부의 기본적 조건 - 돌의 효율 - 이 그런 방향으로 수법발전을 몰고 간다.

7. 반상의 행마는 세모와 네모를 찾아가는 경향이 있다. 반상의 조건이 격자로 구조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8. 공간 인식에는 돌이 필요하지만, 귀와 변, 중앙은 그 외에도 독자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상에서 귀와 변, 중앙이 안겨주는 공간감은 서로가 다르다. 예를 들어 귀와 변은 안정감을 주기에 돌의 안정적 이해에 큰 영향을 끼친다.

C) 인식과 관련해서

1. 인식의 지평은 새롭게 얻어질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세력이 이해되었을 때 공간에 대한 감정이 새롭게 생겨난 것은 그 좋은 예다.

2. 의식의 확대에 사회적인 노력 - 바둑계의, 바둑계에 대한 외부의 - 이 경주되고 있다. 기사론은 그 하나의 예이다. 기사론은 반상 발전에 요긴하다. 

3. 바둑의 이론을 다양한 기준을 통해서 구별하고 상호의존관계를 다룰 필요가 있다. 두터움과 같은 추상적 용어는 반상의 세계를 폭넓게 새겨주는 힘이 있다. 실력은 점진적인 함수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격변이 있을 수 있다.

4. 반상의 장문 외에 심리적 장문도 있다. 바둑을 두기 시작하면 세모와 네모, 그리고 장문의 관념에 크게 휘둘리기 때문이다.

5. 반상에서도 신화는 힘의 원천이다.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실처럼 또는 진실처럼 돌아다니는 것이 신화. 그 중첩되어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합리적 이해가 반상에서도 필요하다. 흑백(黑白)을 가릴 문제는 아니고 적절하게 다룰 정도면 족하다.

II. 다음 경계는 “접바둑의 셋넷”

2005년, 오로에 “접바둑의 하나 둘”을 연재했었다.

이번에 보니 - 그야말로 문득 - “셋넷”이 부족했다는 인상이 왔다. 물론 무엇이 “셋넷”에 해당되는지는 뚜렷하지 않다. 그저 쓰면 쓰게 될 것이라는 점만 안다.

이론과 실전, 그 두 영역을 갖고 노는 것을 방식으로 하는데 즐거움도 강조하고 싶다. 주제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또 다르겠지만 즐거움은 갖가지로 오는 것. 이론적으로 숲을 헤쳐나가는 것은 바둑에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경쾌하기도 한 것.

즐겁기만 하랴.
맞바둑에 비해서 접바둑에서는 배울 것이 더욱 많다.

예를 하나 들겠다.

반상의 본질에 속하는 생동감은 맞바둑보다 접바둑에서 더욱 쉽게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 배움의 하나인데, 논리는 다음과 같다.

접바둑은 맞바둑에 비해서 더 큰 불안과 불안정에서 출발하기에 불균형은 당연한 조건이 된다. 바로 그럴 때 생동감은 더욱 깊은 질감으로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어떻게 극복하느냐?
그것은 접바둑의 조건을 다시 한 번 검토할 때 출발할 수 있는 것.
쉽지는 않겠지만 그 조건을 생동하는 질감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능할까.

에라, 모르겠다.
무작정 길을 떠날 때도 있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