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기(復棋)는 어떻게 해야 하나

I. 복기 장면 하나

복기는 바둑이 늘려고 하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리 말한다.
그리 배웠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국후의 검토 예를 하나 살펴보자.

바둑이 끝난 뒤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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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는 한집 계산을 잘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뭐야, 반집? 1집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바둑이 1집반이라니, 그런 말을 하니 문제야. 반면으로도 어떨까 하는 바둑이었는데.” “그렇다고 안 될 건 없잖아.”
“잠자코 있으면 되는 거야.”
“그럼 이 검토 그만두자.”
‘자자, 그러지 말고’ 하고, 입회인 가노(加納)9단이 달랬다.
(小林光一 과의 제45기 본인방전 제1국의 관전기에서, “조치훈걸작선 3”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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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은 승부일까. 아니면 내용일까. 아마도 승부가 없다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승부욕이 강한 사까다는 복기에도 대단히 강한 의욕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까다는 이기든 지든 感想에는 강하다” - 이에 비추어본다면 복기라는 것이 꼭 프로들에게도 다같이 절실하게 다가오지는 않는 거 아닌가도 한다.

좌우간 인간사(人間事)임에는 틀림이 없기에 묻게 된다.

아름다운가?
바람직한가?
울분에의 배려인가?

다른 예도 하나.

      1보 (조치훈의 3시간 40분)

1985년 2월 일본 제9기 기성전 도전3국.
흑 조치훈. 백 다께미야.

저 흑43 한 수에 쏟은 시간은 약 3시간 여. 봉수를 겸한 수였다.

입회인 이시다가 말했다.
“저 흑43에는 시간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 이 한 수의 곳이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시간은 자책의 시간일 것이다.”

그랬다. 앞서 흑41이 큰 실수. 그냥 A에 두어 백42 흑46으로 두었으면 백이 이길 수 없는 바둑이었다.
그래도 승부는 이전삼전. 흑131이 마지막 패착. 140에 두었으면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무섭게도, 조치훈의 이 바둑은 이미 그 자체 보통 바둑이 아니다. 복기가 곁들여진 바둑이다. 네모난 바둑판, 그 앞에서 마주보고 앉았건만, 조치훈의 반상은 다께미야의 반상과는 그 내용이 달라도 크게 다른 것이다.

이런 표현, 하고 싶다.
“지나치다.”

II. 바둑은 어떤 세상인가

복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무엇보다 “바둑이란 무엇이냐?” 그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할 것이다. 바둑의 본질, 그런 것을 틀리던 맞던 이해하는 한도 내에서만 복기를 다룰 수 있겠다.

이번에 쓴 글을 기준으로 본다면
바둑에서 완전한 수(手)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그런 수는 존재할 수 없다.
바둑은 그런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세계이기에 우리의 감정이 이입하는 세계인 것이다. 물론 반상의 다른 측면, 즉 의미없는 기호(sign)의 세계에는 그런 감정이 불필요하다. 아니, 그런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사활에 무슨 감정이 개입하겠는가.

물론 아주 어려운 수읽기가 요구되는 사활에는 예민한 감각 요구된다. 그 감각이 단순히 기호의 수준에 그치는지 여부는 실로 또 어려운 문제. 단순히 기호적 감각의 깊이가 아니라, 바둑에 대한 본능적인 이해가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사활감각이 필요하다고 때론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초반에서 중반에 걸쳐서 모호한 반상에서는 우리가 빚어내는 감정과 논리를 벗어난 그런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둑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상은 이해되어야 하고 분석되어야 하며, 그 때문에 우리는 감성과 이성에 대한 신뢰를 놓칠 수 없다. 감성과 이성을 떠나서 따로 음미해야 할 반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제 이리 말할 수 있다.
복기는 감성과 이성을 중시해서 다루어야만 하는 또 다른 바둑 세상이다.

“복기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등등
여러 가지 복기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려면 반상에 쏟아지는 감성과 이성을 어떤 식으로든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감성과 이성에 주의하는 것. 그것이 수법의 이해보다 앞서야 하는 이유다.

그러하다. 알려진 역사를 돌아볼 때 바둑이라는 세상은,
바둑계 안과 밖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다음과 같이 합치되는 세계였다.

인간적 고뇌를 수반하는 상상과 논리의 세계, 그것이 반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주하는 승부이긴 하지만
권투와 같이 건조하도록 깨끗한 승부만을 강조하는 세상도 아니며
레슬링과 같이 선(善)과 악(惡)이 들붙어, 순간순간 의미를 자극하는 그런 세상도 아니다.

승부이기에 전쟁모형을 도입했고
처음과 끝과 부침이 있기에 인생을 상정하기도 하는 등,
승부와 인간사 스토리를 상징적으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그런 세상이었다.
반상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요구와
반상에는 고뇌가 표현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적절히 손을 잡은 그런 세상이었다.
확률에 의존하는 주사위 놀음과 같은 부류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였다.

반상에서 “기백의 한 수” “정념의 한 수” 그런 것이 요구되고 또 그리 알려지고 표현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호한 반상에서 은유적 언어가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때, 우리는 안다. 감정의 질감을 반상에서 느끼고 또 그 느낌이 현실임을 안다.

이 글이 바둑의 본질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하나는 분명하다. 그것은 바둑만의 독자적인 세계가 - 다른 문화와 구별하여 - 있다는 것이다. 그러하다. 그 세계를 우린 감정의 질(質)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에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인식하는 방법을 우린 찾아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III. 복기의 실천에는 문화적인 요인이 강하게 개입한다

복기를 하는 것엔 목적이 있겠다.
그 목적에 따라 어떤 방식의 복기가 필요한가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러니 먼저 복기를 왜 하나, 그 목적을 가볍게 둘러보자.

1. 감정을 메우기 위해서
2.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
3. 대국 당시에 놓쳤던 바 수법과 심리의 흐름을 아쉬워해서
4. 명인의 바둑, 그 내용 또는  당시의 공간에 취해보기 위해서
...

다른 측면에서 초점을 잡을 수도 있겠다.

1. 승패의 갈림, 즉 승부처에 대한 집중
2. 배움의 기회로 삼아, 자신의 부족한 점을 냉철하게 살피고
3. 승부처 또는 굴곡이 많은 시점에서의 자신의 내면이 어떻게 흐르고 있었느냐?
  그것에 몰입할 수도 있겠다.
...

목적은 조건 없이, 의미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 승부의 방식과 내용, 반상의 이해 등에 의해서 그 목적은 좌우된다.
그러므로 이런 이해도 필요하다.

복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복기에는 - 그 방식과 실천, 무게에는 - 문화적인 이해가 강하게 잠재되어 있다.

이틀걸이 바둑이 융성했던 20세기 중반 일본에서는 밤새워 복기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문화적인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다. 제한시간 자체가 문화적 안목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TV 바둑에서 그것도 짧은 제한시간의 대국에서 무슨 복기가 가능하겠는가.
분위기 자체가 이미 방석을 깔고 여러 명이 둘러 앉아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문화가 복기에는 필요한 조건인 것이다.

“복기는 바람직하다.” 는 그런 알려진 이야기는 하나의 신화인데 - 자연스러운 듯이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는 문화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권력이 개입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 실제로 자성(自省)을 요구하고 또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그런 문화적 기대와 요구도 있었을 법하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쉽게 손을 꼽는 유교문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

그러나 자성을 요한다는 것이 꼭 유교문화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님도 분명하다. 도덕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는 없다. 사회 자체가 도덕률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IV. 복기의 방식 생각해본다
 
1. 복기가 마주해야 할 두 측면

우린 반상을 어떻게 통제하는가?

1) 수법, 상대보다 효율 높은 수법으로서 반상을 통제한다.
2) 자신을 통제함으로써 반상을 통제한다.

이런 얘기, 조치훈에게 있었다.
“예전에 16세 때만 해도 바로 앞에 앉아있는 사카다 선생의 모습은 안 보이고 대신 네모난 바둑판만이 커다랗게 보여 무심(無心)의 경지에서 바둑에 몰입할 수 있었고 그래서 때로는 사카다 선생을 이길 수도 있었는데, 커가면서 도리어 상대를 의식하는 버릇이 생기는 것은 알 수 없는 일.”

바둑을 승화시키면 예도(藝道)라 한다. 그런데 치훈은 사카다 선생과 마주앉게 되면 웬일인지 ‘바둑은 승부’라는 기분이 앞선다는 것이다. 상대를 의식하면 의식하는 만큼 수법의 발상이나 선택은 제약받는 것. 상대에 비추어서 비추인 만큼만 보려고 하는 것.

그럴 것이다. 승부와 마음은 나눌 수 없기에 실로 마음과 수법 또한 따로 생각할 수 없다.
자신의 마음이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가만히 둘 뿐만 아니라 때로는 통제하는 것, 그것은 명인은 물론이고 모든 프로, 모든 아마들의 숙제이다.

잘 알려진 표현을 빌리면, 예도(藝道)의 길, 기예(技藝)를 닦아나가는 길, 그 길에서 - 이를 일본의 문화라고 생각지 말자. 인류의 문화 그 하나라고 생각하자. - 자기의 억제는 매우 필요한 덕목이다. 자기 통제의 덕목 없이 기예의 진보는 이루기 힘들다.

그러하다. 거의 모든 프로들이 인정한다. 마음이 불편하면 바둑이 아니 된다고. 마음의 평온. 그것이야말로 승부의 더욱 큰 기반이라고.

불편한 마음이란 반상의 세계를 잘 다룰 수 없을 때, 반상에 비춰지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을 때 다가오는 것. 상징의 체계가 뒤섞인 것도 그러한 상황에 들어갈 것이다. 의미가 뒤섞일 테니까. 예를 들면 그 동안 실리 위주로 잘 두어왔는데 갑자기 세력이 눈에 약간 보이기 시작할 때. 물론 세력이 제대로 이해가 된다면 다시 마음은 평정을 찾을 것이다.

그러므로 의문이 온다.
수법과 마음.
복기는 그 두 가지 문제에 도움이 될 것인가.
큰 의문이 된다.

다룰 수 있을까. 다행히 마음은 “제멋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마음의 일부는 조건의 산물임을 말해주는 사례는 우리가 자주 겪는 바다. 인터넷 바둑 두는 분은 다음과 같은 경우를 적어도 한 번 이상 겪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인터넷 바둑을 두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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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읽기 와중에 상대의 착점 속도에 그만 빠져서 상대의 리듬에 따라갔었다. 당연히 행마는 들쭉날쭉하고 호흡에 가쁜 나머지 단수마저 잃어버렸다. 잊은 것이 아니라 잃어버렸다. 리듬은 리듬이되, 상대의 리듬이지, 자신의 리듬을 세우지 못했다. 자신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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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 초읽기 바둑에서는 10초가 바둑을 두지,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향 대단히 강하다.

상대 없이 리듬이 무너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본다. 기성전 도전기 두세 달 전부터 술을 끊어 자신을 일으켜 세운 후지사와도 때론 너무 일찍 술을 끊어 리듬의 회복에 실패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리듬이란 자신을 응시하는 힘,
그것 없이는 얻기 힘든 그런 개념인가.
그리 이해해도 좋겠다.

오청원이 강조하는 바, 거울의 먼지 뿐만 아니라 거울의 내면을 닦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으로 읽혀진다. 닦는 것이 승부에 앞선다. 아니, 닦는 것이 승부를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것은 선생이 알려주지 않은 우리의 숙제.

승부에서 수법은 큰 변인. 그러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수법 스스로 독자적으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실체는 더더욱 아니다. 마음의 인도 하에 마음에 기반하여 수법은 창발되는(emergent) 것.

그러므로 승부와 예도는 서로 독립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승부와 예도의 조화 없이 수법을 밝게 쓸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러하지만 예도라는 것이 무거워서 자기 자신에게 하나의 강박으로 작용하면 아니 되리. 내면화를 이야기한 적 있지만, 그리고 세모와 네모를 이야기했지만, 그것을 반상에서 지나치게 의식하려는 노력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2. 사랑하는 법은 바둑에서도 필요하다

21세기 초, 우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그다지 잘 배운 시대에 속하지 아니한다. 우린 인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인격은 세상과의 삶에 필요한 것으로 기능적인 측면이 강하다. 물론 자기 자신을 잘 추스르기 위해서도 인격은 필요하지만, 여하튼 - 하고픈 이야기는 - 인격이란 것이 그리 단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칫하여 복기가 지나치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복기는 자신이 잘 둔 거보다도, 못 둔 거, 실수한 것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질책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 동안 우리에게 “복기”라는 것은 그런 과정으로 이해된 바가 적지 않았다.

상대와의 갈등과 자신의 질책. 그것이 만약 복기의 주된 동기요 과정이라면 - 그러면 문제가 적지 않다. 자신을 질책하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넌 어떻게 해도 곤란해. 저번에도 그런 실수를 하고 이번에도 그런 실수를 하다니. 넌 아무 것도 아니야.” 이런 질책이 이어지면, 인격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삶이 피곤해진다.

그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하자. 바둑에 들이는 시간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고 하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하나 새겨주는 것만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당신이 명인의 바둑을 감상하면서, 명인의 트인 안목을 하나 새겼다고 생각하자.
그것은 긍정적인 힘을 안겨준다. 아래 1도를 보자. 저런 광활(廣闊)한 감성의 수법이 표현될 때 우리의 손길은 힘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윤기로도 적셔진다. 그건 인터넷 마우스에서조차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표현수단이 돌이 아니라 화면이라 할지라도 우린 충분히 기억한다. 검지와 중지, 그 손가락에서 저 수법의 질감을 느낀다. 

      1도 (명인의 안목 - 광활하다)

      2도 (실수, 큰 실수지만 메마른 수법일 뿐이다)

2도는 실수(失手)의 예로 안타깝지만 단순한 기호일 뿐이다. 어려워도 기호적인 수준이다. 흑1은 2, 백A 흑1 백B 흑C로 두었어야 했다. 그것이 좋은 맥점.

2도의 경우를 만났을 때 - 흑을 잡고서 - 이런 장면은 돌아볼 필요가 없다. 기술적인 것으로, 이미 입단 전에 - 프로라면 - 공부가 끝난 내용이다. 이런 것을 다시 한탄한다고 해서 돌아본다고 해서 기술적으로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인 수법에서 틀렸을 경우 대개는 자책이 필요하지 않다. 맥이든 포석에서든. 아느냐, 모르느냐, 그 차이일 뿐. 이런 것에는 그리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복기할 때 실전에서 실수한 부분이 기호와 관계된 것이라면 굳이 자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탄은 대개의 경우 이런 당연한 수법을 놓쳐버렸을 때 온다. 그와 달리 기술적인 것이 아닌, 미처 생각지 못한 전망이나 안목을 복기 때 얻는다면, 그건 한탄의 대상이 아니 된다. 배움이 앞선다. “아! 그런 방식이!”

어느 것을 마음에 새겨두는 것이 바람직할까?
반성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 반성은 가벼워야 한다.

잠시 “복기”에서 “복(復)”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다루어볼 필요를 느낀다.

주역(周易)에서 복(復)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효사는 “대체로” 그 내용이 밝다. 희망적이다.
돌아보는 것, 그것은 알 수 없는 인생의 길에서 조심스런 태도를 반영한다. 물론 복(復)이 들어간 효사에는 부정적인 것도 없지 않다.

과연, 모든 돌아봄이 바람직한가?
바둑은 물론이지만, 바둑이 아니더라도 깊이 냉정하게 생각해볼 만한 주제이다.

복(復)에는 문화적인 2개의 반응이 겹쳐져 있다.
하나는 도덕적 지침.
다른 하나는 생존.

원시인들은 불안했다. 생존이 무엇보다 절실하니까. 그래서 의식에 발생한 것이 시뮬레이션(simulation)의 버릇. 본능에 가까운 버릇. 주변을 끊임없이 감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순간의 돌발 상황을 예상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그 상황을 영상처럼 머릿속에서 자꾸만 돌아본다. 돌발적인 상황 - 위험하고 부정적인 - 을 예상하는 것은 곧 그런 현실을 하나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과연 부정적(否定的)인 거 고치겠다고, 불안을 내면에 되새기는 것이 오늘날에도 바람직한가? 주변의 포식자가 사라진 문명화된 오늘날에도? 원시시대에 필요했던 본능이 오늘날에는 주의해야만 할 위험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오히려 무의식적 시뮬레이션의 강화로 심리적 불안으로 연결 되는 거 아닐까. 그런 의구심은 심리학에서 오랫동안 잘 알려져 온 것. 그 여지 높고도 높다.

반상에서 긍정적인 거는 자신에게 부족한 거, 배우고 싶은 거, 장점을 더욱 크게 살리고 싶은 거, 그런 것인데, 그런 것의 강화로 이어질 여지를 시뮬레이션은 없앨 것이다.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
부정적 복기는 가볍게, 긍정적 복기는 넉넉하게.
왜냐. 긍정적인 마음은 현재의 불안을 재워줄 힘이 될 뿐만 아니라 부정적 시뮬레이션에 들어가는 에너지까지 발전에로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3. 생각이 많으면 삿될 수 있다

“빨리 두고 50 수 안에 승부를 본다.“

19세기 죠와(丈和) 명인의 탁견(卓見)인데, 생각이 많아 삿된 방향으로 흐르는 거 경계하는 말씀이다.

이 시각에서 보면
수법보다는 상대적인 차이를 음미하는 방향에서 복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수법에의 이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수법은 평상시 공부하는 것으로 그치고 복기 할 때에는 중점을 다른 방면으로 돌리는 것이 좋다.

사고의 폭과 깊이를 넓히고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그런 방식이 복기에는 바람직하다.
말이 쉽지, 실력이 부족하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니 된다고?
물론 그런 아쉬움이 우려로 남는다. 그러나 그 또한 일푼의 진실.
이론적으로 볼 때 그 우려는 지레짐작이 지나친 것으로 생각된다.

프로의 언어를 생각해보자.

프로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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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텁다/ 엷다
무겁다/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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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언어의 핵심 하나는 개념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사고의 폭과 깊이를 창조적으로 넓히려 할 때 무엇보다 요긴한 것은 개념의 상대적인 측면을 잘 다루는 것. 이해하는 것. 정반합(正反合), 그 변증법적 논리는 의식의 성장에 기초가 된다.

변별하는 힘은 논리적 추론에 없어서는 아니 될 것인데, 변별의 핵심은 “차이”의 "인식틀"을 어떻게 만들어가는가에 달려 있다.

부분적 수법의 이해는 이러한 개념에 비해서는 그 중요성이 한참이나 떨어진다. 왜냐. 반상은 의미가 다맥락적으로 주어지는 곳. 모호한 반상에서 의미를 각자의 시각에서 잡아채야만 할 때, 그 힘은 추상적인 개념에서 온다. 

그러므로 수법보다는 상대적인 가치를 음미하는 방향으로 복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음 기보 4개는 수법의 다양한 측면을 일부 예시한 것인데, 수법은 하나의 범주로 통일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3도 (백2가 가볍고 두텁다 - 이는 추상적 안목에 익숙할 때)

      4도 (공배의 묘수 - 후수의 선수로 두터움과 구체적인 기호가 더해졌다)

      5도 (깜박한 껴붙임 맥 - 단순한 기호에 속한다)

      6도 (포석에서 1립2전 - 기호에 가깝다)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다.

3도/ 백2가 배울 만한 수법. 이 수를 3에 두면 흑A 앞길 막혀 답답하고 무겁다.

4도/ 흑7이 “공배의 묘수”로 회자된다. 1812년 대국. A B C는 공배의 묘수를 이해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의 조합, 그 요소. 평범한 수법을 보여드리는 것이 이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래도 이 바둑은 과연 역사에 남을 만한 맛이 충분히 있기에 선정했다. 

5도/ 흑1을 백은 깜박했었다. 미리 백A 흑B 교환해 두었으면 그만이었는데. 명인의 수준에서는 너무나 쉬운 것이었는데. 아마추어 5단만 되어도 알 수 있었을 수준의 맥.

6도/ 1706년의 대국. 앞 글에서 본 도치(道知)가 백으로 둔 바둑. 오늘의 우리와 포석 감각이 다른가, 같은가. 우리가 정점(頂点)은 아니다. 상변 백2 백4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안목. 누구나 이리 두리. 백6이 쉽지 않은 감각. 다음 흑A는 백B 흑C 백D로 백이 좋다.

그러하다. 반상의 수법에도 분별이 요청된다. 토대가 되는 수법이 있고, 실전적인 수법이 있는 것이다. 분류 못지않게 수법의 계층적인 질서를 - 포괄한다든가, 기초가 된다든가 하는 그런 식의 기준으로 -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 “후수의 선수”는 묘한 범주가 되겠다.
단순한 수법도 아닌, 두터움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수법. 그럼에도 웬만큼은 구체적으로 사례를 적시(摘示)할 수 있는 수법.

반상 수법의 변별, 그 초점은 맥락을 다루는 것으로 순서가 있다(一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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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을 온몸으로 읽어내는 것.
그 읽어낸 맥락을 상징으로 갖고 노는 것.
상징화 과정 속에서 인식과 표현에 가장 적절한 부호를 찾아내는 것.
부호, 즉 행마나 맥을 반상에 드러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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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이론적인 힘은 모든 사람에게 요긴하다. 예를 들어 나이 30이면 이미 지적인 수준에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생애를 돌아볼 때 10대는 물론 20대보다도 높은 수준의 이해력을 갖고 있다. 10대나 20대보다도 더욱 더 개념의 힘을 잘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예, 많이 들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에 이론적 이해에 있어서는 - 어린 아이에 비해 - 어른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잘 적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력 향상으로 곧 직결된다는 것이다.

이론은 안목 뿐만 아니라 마음이라고 불리는 모호한 존재“감”과도 통한다. 이론 없이 마음의 넓이를 넓힐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바둑의 세상에 대한 통찰 없이 반상의 넓은 지평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바둑을 배우면 한계도 있지만 장점도 있는 것.
어른들이 이론적 이해로 바둑에 빨리 다가서는 경우가 많다, 라는 그 사실이야말로 복기의 방향을 알려주는 강력한 사례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앙의 한칸 맛을 알게 되면 - 이론적으로 - 눈이 굳이 아래로 흐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 중앙으로 한칸 뛰는 것이 반상을 넓게하는가를 모른다면 눈이 위로 올라설 수 있을까? 3선을 넘어서라, 강조해도 중앙의 이해 없다면 과연 가능할까?

물론 종합적인 실력이 없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안목이 올라갈수록, 실력이 높아질수록 자연스레 부정적 실수는 적어질 것이고 많은 한계를 넘어설 것도 당연하다. 실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비선형적 곡선을 긋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연구가 없었다면 - 없었기에 지금 이 글 쓰고 있지만 - 지금이라도 그 논리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계발할 일이다.

4. 자각과 장점의 발견

앞서 보았듯이 자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장기적으로 보아 죄의식이나 자책에 가까운 반성은 조심해야 한다. 

여기서 하나의 힌트, 얻을 수 있다.
장점을 찾으라.
장점을 확장하라.

실로 장점은 스스로 찾기는 힘든 것. 다행히 타자(他者)가 알려준다. 타자가 자신의 일부를 이룬다. 자신을 이끌어준다. 바둑에서는 상대와의 대국에서 상대가 알려준다. 그것이 자신의 장점을 찾는 쉬운 방법이자 놓칠 수 없는 기회. 장점을 인정하자. 장점을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말자. 자신의 황금을 찾는 것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기에 인색하지 말자.

또 하나 알 수 있다. 바둑의 언어가 생동적인 것을 생각하면, 복기는 내면의 저항을 없애는 방향에서 활용될 수 있다. 저항의 시점과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내면의 저항이 언제 일어나나?
실전에서 일어난다.

그러면 언제 그것을 제일 빨리 자각할 수 있나?
복기에서다!

V. 이론적인 논의의 첫걸음일 뿐

1)
이 글의 한계를 말해야겠다.
이 글은 이론적인 논의로 시작해서 이론적인 이해로 그친다. 아쉽게도 내용이 어느 정도 논리적인지는 판단이 어렵다. 그것은 비판 없이는 드러날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 것은, 이론적으로 타당하다는 판단 때문인데, 두려움은 남는다.

“학생을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한가?”
만약 이 글이 그런 문제에 답해야 한다면 그건 조심 이상으로 두려운 일이다.
가르치는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보다 넓은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해주기 바랄 뿐이다.

이론적인 논의는 토론과 검증이 필요한 것.

2)
요즘 짧아진 제한시간 때문에 감성과 개성이 반상에 스며들 여지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변화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다음 문제 하나는 언급하고 싶다. 

“반응”과 “다루는 것”은 다른 것.
“실수를 적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과 “새로운 경계를 창조한다는 것” 또한 달라도 이만 저만 다른 게 아닌 것.
반상의 질감을 독창적으로 느낄 여유가 없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

바람직하다, 아니 하다, 감히 단정할 힘은 없지만 바둑의 본질에 비추어볼 때 아쉬운 점은 적지 않다. 감성과 이성이 개입하여 반상 자체의 질감을 강조하는 것이 곧 바둑이라는 점을 돌아본다면 아쉬운 점을 굳이 말 아니해도 되리.

반상의 질감, 그것은 감성과 이성이 적절히 뒤섞일 때야 비로소 얻어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