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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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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의 승부 - 욕심이 적을 때 - 아쉬움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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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2월 1일)
5년간의 승부 - 욕심이 적을 때 - 아쉬움도 적다
아침 7시 13분.
아직도 겨울이다. 어둡다. 입춘이 사흘 후건만 아직은 겨울이다.
그러나 이미 계절은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음을 알겠다.
간밤에 잠깐 내린 세우細雨가 봄을 재촉한다.
편한 시절이었다.
태평스런 시절이었다.
약간의 위기감이 20대 말의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건만, 그래도 맘 편한 시절이었다.
정말이지, 그 하숙집은 대단히 추웠다. 겨울에 얼마나 추웠는지 밤에 포장마차를 들러야 눈을 붙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잠 깬 새벽의 그 떨림이란! 보일러는 작동했지만 집이 워낙 오래된 것이라 우풍도 심했고 온기도 방바닥에 있는 둥 없는 둥 했다. 추웠다. 내가 몸이 말라 지방이 부족한 때문이었던가? 하하.
그러던 어느 날, 동교동의 산울림 극장 아래 선배 하숙집에 놀러를 갔다. 집은 좁았지만 따뜻했다. 매우 따뜻했다. 천정도 낮은 좁디 좁은 방만 3개 있었는데, 뜨끈뜨끈한 아랫목은 정말이지 사람을 그렇게 잠 오게 만들었다. 엉덩이를 녹인다는 것이 그렇게 새삼스러울 줄이야. 몸이 따뜻하니, 주인의 인정도 그리 따뜻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시 쓰는 친구는 남겠다고 하고, 나는 떠났다. 그것이 1월.
나는 인정이 없는 때문인지, 자주 자리를 옮기는 편이었다. 지금 돌아보니 더욱 그러하다.
새로 옮긴 따뜻한 집에서도 겨우 1년 정도 생활했으니, 그 참.
용직이 삼촌! 하고 부르시는 그 인정 많은 집에서도.
초겨울부터 책을 제법 읽었다 했지만, 그러나 그건 내 마음의 기준. 책에 깊숙이 들어가면 바둑 둘 시간도 잘 낼 수 없다.
우연히 책을 뒤적이다보니, 내 87년 1월과 2월에 약 10국을 둔 것으로 나타난다. 2차 예선 결승에 올라간 것도 있고 3차 예선 결승에 올라간 것도 있다. 그리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나보다.
그러나 아쉬움은 없지 않았다. 욕심이겠지만 87년 초부터 시작된 선풍대결 - 정예 5강과 신예 5강의 승발전 승발전 - 에 나도 한 번쯤 참가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런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성적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나는 그 어느 쪽에도 선발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프로니 그런 마음도 들었던가 보다. 그리 생각한다.
찾아보니, 친구 하나 놀려줄 좋은 기보가 눈에 뜨인다.
(선풍대결 3국)
선풍대결 제3국
1987. 3. 2.
白 황원준 五段
黑 임선근 五段
흑117 이하 생략 흑 1집반 승.
초반 좌하귀 백30이 큰 실수. 38에 두어야 했다. 이후는 흑 우세.
그러나 흑109가 큰 실수로 사실 우상귀 백의 형태에는 맥이 숨겨져 있었다.
문제로 풀어보자.
(맥점이 있다 - 문제)
(맥점이 있다 - 답1)
(맥점이 있다 - 답2)
흑이 이 수를 못 보다니! 하하.
아니군. 답3처럼 되면 중앙이 다른가? 음, 넘어가자. 모르겠다.
(맥점이 있다 - 답3)
아마도 성적이 그런대로 남은 까닭은 큰 욕심 없이 바둑을 두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7월 논문을 마칠 때까지 내 성적은 16승 9패. 4단 이하 다승 5위였다.
그러나 그런 때가 한 때는 있을지라도, 그런 때가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더욱 없으며,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더 현실에 맞을 것이다. 욕심 없이 바둑을 둔다면.
가만, 그러나 욕심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지?
옮긴 하숙집에서 기억나는 유쾌한 일이 하나 있다. 산울림 소극장에서 철로를 거쳐 신촌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것으로 지금도 즐겁기만 하다.
나는 호떡을 좋아했다. 그래, 그 길목에 호떡을 파는 청년이 있어 자주 들러곤 했었다. 서서 먹기도 하고 하숙집으로 사와서 웃기도 하고. 매우 맛있는 호떡이었는데 비결이란 땅콩가루와 계피가루를 적절히 섞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자주 들러 한 봉지씩 사는 것을 보곤 했다. 한 마디 던졌다.
좀더 장사를 늘리지 그렇습니까. 맛있는데요.
그러자 그 청년 크게 말하기를, 표정도 변하면서 진지하게!
아, 지금도 바쁜데 장사 더 잘되면 난 어떡하라고!
하하. 정말 크게 웃었다.
그런데 그 청년 호떡 굽는 기계가 몇 개였을까? 겨우 두 개였다! 하하. 단 두 개!
어느 낮에 그 근방 만화집에 들렀더니 그 청년 바로 그 집에서 만화 보고 있었다. 드러내놓고 아는 체하지는 못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 분명했다.
그 청년은 밤에는 장사를 하지 않았다. 대신 밤에는 그 자리에 국수를 바로 뽑아서 말아주는 포장마차가 들어섰는데, 그 때문에 하숙생들은 밤만 되면 나갔다 들어오는 것이 일이었다. 짜장 국수처럼 둥글게 뽑아 썼는데 한 그릇에 500원이었다. 면발이 어찌나 쫄깃한지 양념 맛보다 더욱 입맛을 당겼다.
겨울이 지나자 호떡도 국수도 사라졌다.
대신 3월이 들어섰다.
마지막 학기를 마칠 생각을 굳혔다. 논문을 쓰자. 그리 맘 먹었다.
그 다음에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하도록 하자. 그리 맘 먹었다.
아침 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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