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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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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의 승부 - 조건의 변화를 꾀하다 - 하숙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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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월 4일)
- 5년간의 승부 - 조건의 변화를 꾀하다 - 하숙을 시작하다
아침 7시 45분.
나는 만학도에 가까웠다. 집 나이로 28살 되던 해에 대학원에 입학했으니 그러하다. 중간 중간 학교와는 담을 쌓고 지낸 시간이 적지 않기에 그러하다.
그래서인가. 성격 때문인가. 프로들이 갖곤 하는 자유로운 생활이 다시금 그리워서인가.
나는 하숙을 시작했다.
85년 여름.
책도 몇 권 없을 때라서 짐을 옮기는 것은 매우 가벼웠다. 가방 두 개 정도 들고 가면 그것으로 이사가 끝이었다.
첫 하숙집은 학교에 가까운 신촌 신수동 언덕에 얻었다. 그러나 보름 만에 자리를 옮겼다. 집은 깨끗하고 빨래 또한 깔끔했다. 학생과 회사원이 반반. 그러나 인심에 문제가 없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내 방은 식당 바로 옆. 어느 날. 수박 먹는 소리가 들리는데 - 회사원이 사온 수박을 주인과 함께 왁자지껄하게 - 시간이 흐른 후 나에게 수박을 한 쪽 가져다 주었다. 마른 것으로.
대구가 고향인 시 쓰는 친구가 말했다. 하숙집은 이런 곳이어야 해.
그 집으로 갔다. 허술한 2층. 음식은 대충 대충. 그러나 듬뿍 듬뿍. 먼지는 여기 저기 풀풀. 벽지는 누랬다. 층계 삐걱 삐걱도 귀에 거슬렸고, 화장실도 적당.
그러나 편했다. 깔끔을 약간 떠는 내가 - 당시엔 - 나에게 깜짝 놀랄 정도로 마음 편했다.
방 하나 주십시오.
독방으로 주십시오.
2층 큰 방을 얻었다. 얼마나 큰 지, 이랬다.
겨울이 오기 전인데, 이불 펴 놓은 자리와 방문 사이에 오솔길이 생겨났다. 이불은 개지 않아서 몸만 넣었다 나왔다 했으며 청소는 하지 않았기에 그런 길이 생겨난 것이다. 이불과 방문 사이만 오간 것이었다. 그래도 핑계 하나. 방이 넓으면 청소하기 정말 귀찮은 것. 가구라고야 책상으로 쓰는 그 집 오래된 호마이카 식탁 하나.
한 번은 겨울에 이계훈 사범이 탁주를 들고 놀러를 왔었다. 방문 밖에 앉더니 “그만 나가자.” 그 한 마디였다. 하하.
음식 듬뿍 담아주던 하숙집과 술 얘기 나오니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하루는 김홍명 교수님과 신촌 연대 앞 시장, 김치찌개집에 갔다. 소주에 안주는 냉면 그릇에 담은 찌개 하나씩. 어찌나 양이 많던지 놀랄 뿐이었는데, 이런 저런 얘기에 몇 병 비우고 나니 어느새 한 그릇. 얼큰히 취한 상태에서 2차는 포장마차. 그런데 어찌나 취했던지 그만 내가 먼저 일어서고 말았던 것이다. 인사도 안 드리고. 하. 아침에 일어나니 소위 술 먹는다는 놈이 부끄럽기도 하고, 또 뭐 그렇기도 하고. 그래, 그래도 학교는 가자. 선생 말씀. 내 책임일세. 그리곤 책.
술자리가 많은 것은 사실 공부를 적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술집에서 듣는 귀한 공부도 있는 것이 사실. 그러나 공부는 좀더 했어야 했다.
한편으로 정치학 하는 자, 당시의 뒤숭숭한 시국時局 때문에 도서관에서만 앉아있기엔 열정이 앞설 사정도 없지 않았으리. 그래도 공부는 좀더 열심히 했어야 했다.
공부는 저마다 할 때가 있는 것. 집중해서 스스로 의문을 갖고 풀어나가는 것.
나는 그런 의식으로 살아왔다. 물론 사회나 제도가 테두리 지우는 개인의 한계 또한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래도 자신이 책임질 일이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하숙도 술도 공부도 나의 불안정한 의식을 자리 잡아 주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런 걸까. 내 의식 아래에는 언제나 바둑이 있었기 때문일까.
핑계로는 꽤 그럴 듯하다.
그렇다면 바둑이 나를 잡아주지 못한 것은 공부 때문이었을까. 음…, 공부라고 할까 학문이라고 할까. 학문이라고 하기에는 내 미래의 청사진을 갖지 못한 때문에 여기서 쓰기는 좀 적절치 않다. 그러나 공부라면, 무슨 공부?
청년기의 불안.
무난한 표현이겠다.
그럭저럭 학교는 다니고 있었지만, 학문에의 입학은 멀고도 멀었다.
이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이론을 배우고, 설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내가 그 동안 잡고 있었던 사회라는 대상이 사실은 실체와 거리가 먼 것이라는 점을 약간이나마 깨닫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대학 다닐 때는 정의와 안타까움으로 세상을 설명하곤 했었다. 그것을 자신만의 논리로 맞추어서 마땅히 그래야 할 세상이 현실로 되지 못한 것에 술을 붓기도 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점을 약간씩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알아 가는 과정은 자신이 안고 있었던 것을 부수는 과정. 불안이 고개를 쳐든다.
바로 그럴 때 바둑은 여전히 나에게 언덕이었다.
바둑에 돌아오면 내가 약간은 둥글게 볼 수 있었던 바둑의 세계가 나를 맞이했다.
바둑 두는 내 마음에 의식되는 불안은 없었다.
여전히 어정쩡한 생활이 1985년의 겨울까지 이어졌지만 그래도 바둑은 내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리였다.
물론 바둑이 안정적인 동네라는 뜻은 아니다.
승부의 결과에 따라 몸과 마음이 흔들리는 유동적인 세계가 프로바둑의 세계 아니던가.
85년 여름.
위험대결에서 도전5강은 조훈현에게 두점의 수모를 겪었다. 선先으로 2패 한 것이다.
프로가 프로에게 두점으로 내려간다? 하!
더욱 더 기막힌 것은 두점으로도 한 판을 졌다는 사실이다. 하!
당사자의 흉중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지만, 나도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멍했었다. 처음 그 소식을 접한 순간엔.
다음 표현이 남아있다.
“질 수밖에 더 있어? 자네 두점 바둑 옛날에 둬보고 쭉 호선만 뒀잖아! 그러니 돼?”
승勝보다 패敗가 많긴 하지만 호선으로도 이기곤 하던 바둑을 두점으로 졌다?
그렇다. 프로의 승부는 그토록이나 불안정한 것이다.
만약 조훈현과 도전5강이 위험대결을 호선으로 시작했다면?
그러면 절대 두점으로 내려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심리적인 무장해제, 바로 그것을 위험대결은 애초부터 도전5강에게 안겨준 것이었다. 조건은 결과에 대해 무정한 것이다.
조훈현은 언제나 배수진. 그러나 도전5강의 뒤엔 강물이 없다. 물러서고 물러서도 언제나 높은 고지高地에서 싸우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안이함 이상의 심리적 불안정을 가져온다.
반전무인 盤前無人
그 자리를 갖추라고 강조한 다음, 그 자리를 애초에 없애버린 조건.
덤 없이 흑으로 시작한다.
내 입단한 이후 지금까지 승단 규정이 두어 번 바뀌었는데, 80년도엔 이랬다.
150점을 두 대국자가 나눈다.
같은 段일 경우 흑일 때 덤은 없다.
백이 이기면 백 120점, 흑 30점.
흑이 이기면 흑 90점 백 60점 - 이 점수가 정확한지는 확신이 없는데, 틀리더라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안다.
두어보면 백을 잡는 것이 훨씬 편하다. 흑을 잡으면 이겨봐야 본전.
백을 잡으면 이기려고 한껏 노력한다.
흑 잡으면, 물러서고 물러선다.
의욕이 다르다.
조건의 조정,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의 행동을 관리하는 첫걸음이다.
나는 내 주변 조건의 변화를 꾀함으로써 - 하숙, 바둑에 할애하는 시간 - 나 자신을 바꾸려고 했었다. 85년 당시엔.
아침 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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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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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g555 |
｜ 2006-03-02 오전 4:25: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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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조건의 조정,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의 행동을 관리하는 첫걸음이다,라는 것은 그것이 가능할때만 성립하는 것이며 불가시에는 극복해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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