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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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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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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4월 12일) - 알았을 것이다
다시 버릇이 살아났다. 화장실에서 책을 읽는다.
오늘 본 것은 오청원 선생의 묘수집.
본 문제는 이것 저것.
그 분의 말씀 하나는, 정 모르겠으면 해답을 보십시오. 패턴을 기억하는 것, 이것도 좋은 학습방법입니다.
나는 해답을 먼저 보는 편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제1감으로 뭔가 오지 않으면 생각을 이어가기도 힘들거니와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치우친 안목 때문인 듯하다. 아니다. 바둑에 지친 때문일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래도 당분간은 바둑일을 하겠다.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은 현실이며 그건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잠깐, 누군가의 시간을 듣는 시간이 왔다가 갔다.
참고도1
반상을 생각하자. 그게 지금의 일이다.
국후 두 대국자는 백1을 전제로 해서 많은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지우곤 그렸다.
입회인인 내가, 도전자 최철한 6단이 이겼습니다. 흑145가 마지막 수로, 이창호 국수가 돌을 던졌습니다. 국수전 도전 제2국이 끝났음을 알립니다.
뭐, 그런 멘트를 하나쯤 하려고 미리 준비도 해 두었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돌을 던지는 자리에 있었지만, 두 대국자는 주위에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고 복기에 복기만 거듭하고 있었다. 폐쇄회로 TV를 통해 대국이 끝난 것을 안 기자들이 순간을 놓칠세라 대국장에 쏠리듯 들어왔다. 두 대국자의 눈길이라도 하나 잡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손길만을 보았다.
나는?
나는 두 대국자가 놓아가는 수순을 빠뜨릴세라 주시하고 있었다.
자신했다. 약간씩 진폭을 바꾸어가며 수없이 반복되는 이 그림, 저 그림을 기억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그 정도 變奏쯤이야 기억할 수 있다.
처음 본격적으로 바둑을 공부하던 때, 하루 저녁에 현현기경 묘수풀이를 100개는 풀 수 있었을 때, 시간이 꽤 지난 후에도 문제까지 다 기억할 수 있지 않았던가.
그게 30년 전인데, 여전히 나는 나를, 기억된 나만을 나로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틀렸음을 오늘 다시 알았다.
2월의 7일에 있었던 그 복기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그림이 지나갔던가.
앞으로 내가 이런 복기의 그림이 있었다고 이 日記에서 주장한다면, 그건 내가 만든 것이다. 나의 수준에서.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랬다. 외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 논리를 따라 알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2004년 2월의 7일에.
그러나 틀렸다. 나는 그런 내가 아니었다.
의문이다.
저 백1을 이창호 국수는 왜 놓쳤을까.
실전에서는 둔 다음 즉시로 알아차렸을까. 그래서 돌을 던지자마자, 곧 몇 개의 돌을 쓸어내고 바로 저 자리만 검토에 검토를 거듭한 것일까.
그랬으리라고 짐작한다.
참고도2
참고도2에서 백2와 백4는 고전적인 맥점이다. 참고도1 백1과 다름이 없는.
참고도3
참고도3은 그 이후의 수순이고.
그래, 바둑이 안 되려면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지.
아니다. 이는 틀린 말이다.
인과의 문제는 풀기가 매우 어려운 것. 풀기는커녕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
조심하고 조심하라, 용직아.
실전1
실전은 백이 가시밭길로 들어선 것과 다름이 없었다.
흑85가 놓여진 순간, 그 순간에
이창호의 표정이 석고처럼 굳어졌다. 밀랍처럼 창백해졌다.
만약 내가 옆에 있었다면, 분명히 그 표정을 보았을 것이다.
그의 코 등에 흐르는 땀이라도 보았을 것이다.
그의 안색이 상기되는 순간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묘사를 했을 것이다. 그 정도의 과장은 실제에 비해 과장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둔감한 기사라도 흑85를 당하는 순간엔 아차! 하지 않을 수 없는 법.
실전2
실전2는 피할 수 없는 길.
참고도4
참고도4는 앞서 참고도1 백1을 두었다면 진행되었을 법한 수순.
참고도5
그런데 그 장면에서 참고도5를 진행할 바보가 있겠는가. 그런 프로는 없다.
참고도5는 실전2를 수순만 바꾼 것이 아닌가.
소위 수나누기라는 비교의 방식.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빗나간 맥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으리.
저 실전의 백82와 백84는.
그래, 이창호도 실수를 한다.
최근 그의 실수가 잦아진다고 느껴진다.
예전에는 그가 실수를 하지 않았던 것일까.
최근 후배에게 지는 경우가 많기에 그렇게 보이는 걸까.
그래, 그 이유는 찾을 필요가 없다. 적어도 오늘은 없다.
그는 대단한 기사다.
오늘 왕레이와 둔 바둑을 보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는 대단한 기사다.
왜 뛰어난 기사라고 나는 표현하지 않는 걸까.
이유가 있다.
참고도6
참고도6은 그의 백. 얼마 전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자신이 흑을 잡고 둔 포석 그대로이다.
대단한 기사다.
밤 10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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