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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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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전의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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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3월 23일) - 점심시간 전의 25분
햇살이 황금빛이다. 눈은 그렇게 열려지고,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이 귀를 깨운다. 저 새의 이름은 무엇일까.
먼 차도에서 울려오는 자동차의 속도. 저 차의 하루는 저 속도로 시작되는가.
창문을 열어젖힌다.
앞 산 능선에는 어느새 연초록빛 물빛이 겨울의 裸木을 물들이고 있구나. 집 앞을 두른 들판엔 지난 가을의 억새가 메마르게도 살아있지만, 그 앞을 흐르는 시내와 차도, 검은 색 함석지붕을 인 기울어진 집 몇 채가 이른 봄날의 속삭이는 아침을 자연으로 구성한다.
창을 더 열까.
그러면 더 멀리, 더 넓게, 더 밝게 산하를 바라볼 수 있을 터인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있다.
그래도 된다.
창을 좀더 열려고 가까이 다가가니 조금 전에 보았던 그 풍경은 오른쪽으로 사라지고 왼편의 마을이 정물처럼 앉아있다. 부드러운 산자락에 안긴 마을.
물론 그 마을엔 3층집도 2층의 펜션도, 고급스런 전원주택도, 아무도 살지 않는 廢家도 主客의 구별 없이 너나 없이 모여들어 있다.
시골은 있되 전원은 없다.
전원이란 단어는 우리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시골이 있을 뿐.
변해도 변해도 시골이 있을 뿐.
전원은 理想鄕도 아니요, 現實도 아니다. 그냥 그런 공간이다. 도시의 속도가 만들어낸 관념의 공간이다.
어제 저녁 썼던 글을 읽어본다.
어? 이게 뭐야.
…
역시 밤의 나와 아침의 나는 다른 인물이다.
어제 저녁의 나는 2월 7일의 반상에 머물러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2월 7일에 두어졌던 기보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 아침은 다르구나. 나는 2월 7일의 12시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나는 그 때에 있는 것이 된다.
2월 7일 12시를 막 지나 5분이 흘러갈 무렵.
점심시간은 12시 30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말했다. 서둘러 대국장으로 가야겠다고. 뭐, 그럴 것까지야. 10분 전에 들어가면 되지요.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가.
어느새 오전은 지나가고 대국실 옆 공개해설장에는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50명은 넘지 않았을까. 2시에 김찬우 사범의 공개해설이 예정되어 있으니, 그리고 유창혁 9단과 이상훈 4단 등 프로기사 5명의 다면기도 마련되어 있으니, 함양군 인근의 애기가들이 일찌감치 발걸음을 재촉했던 것이다. 마침맞게도 날이야 토요일이니. 날이야 하얀 눈발이 그쳐 햇살이 빛나고 밝기 그지 없었으니.
12시 10분. 그 시간 조금 못 미쳐서 나는 대국실로 향했다.
문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은 이창호 국수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보곤 눈으로 표정으로 가벼운 인사를 한다. 등을 뒤로한 최철한 6단은 고개를 반상에서 떼지 않고 있었다.
옆으로 가서 의자에 앉아 반면을 보니, 바로 이 장면.
실전1
그리고 그 후 20분간 내가 본 것은 다음 실전2.
실전1
흑51, 4분 22초
백52
흑53, 5분 32초
백54
흑55, 2분 30초
백56
흑57, 10분 57초.
그리곤 점심시간을 알렸다. 12시 30분이었다. 정확하게. 초까지 보면서 점심시간을 알렸다. 그 1, 2 전에는 사진기자와 함양군 관계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나는 약간 묘한 느낌을 얻고 있었다. 이 국수가 대국을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고 있구나. 정말이지 선배가 후배를 맞이하여 담소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물론 최철한 6단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최 6단은 반상에 집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도전자는 반상에 집중하고, 국수는 반상을 내려보고 있는 듯한 모습.
사실, 그 느낌은 9시 30분 대국 개시부터 찾아오고 있었다. 분명했다. 그 느낌은 3월 23일 아침의 나에게 선명한 그림으로 남아 있을 정도다.
흑51부터 흑57까지의 시간. 그 한 수 한 수에 들어간 소비시간은 나의 판단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백은 그렇게 둘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나 내가 받은 인상은 반상을 넘어선 것이 분명하다.
7시 53분. 아침 공기가 신선하여 몸과 정신이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앞집의 닭이 긴 목소리로 아침이 밝았음을 새삼스럽게 알린다.
너무 오랫동안 있지는 말아야지. 점심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잠시 끊자. 함양의 2월 7일에서 나는 벗어나야겠다. 내일 다시 가도록 하지.
오늘 나는 할 일이 몇 개 있다. 약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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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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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아직 바둑을 잘 모르지만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저로서는 참 편안하게 읽을 수 있네요. 20년 넘게 띄엄띄엄이나마 일기를 써오기에 매일 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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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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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범님의 글은 항상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었서 재미있게 읽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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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향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