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둑의 위상이 높다. 지난 10년 사이 한국은 국제대회 23회 연속 우승이 말해주듯 대단한 성적을 과시했다. 당연히 바둑을 두는 모두에게 자부심이 새겨지며,우리가 실력으로 세계 최고인 듯한 느낌도 든다.
자신감은 세계를 자기중심적으로 보게 만든다. 중국의 자부심은 자신을 중화(中華)라 부르고 한 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한데서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의 자부심은 곧 세계화와 그들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도 드러낸다.
언제부턴가 일부에서는 한국 기사들의 바둑에서 나타난 그 어떤 특성-모양에 개의치 않는 전투적인 경향-을 한국류(韓國流)라고 부르고 있다. 상대적으로 일본 바둑은 모양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실전에 약하다는 설(說)도 제시된다. 예컨대 오오다케(大竹) 9단의 바둑이 미학적(美學的)이라는 것. 그래서 실전적이 아니며 깨끗하다는 말. 성격도 담백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러한 평가는 평가자들의 자기 납득 비슷한 거 아닐까. 기대하는 관념을 만들고 또 그 관념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현실로 인정하는 경향이 남긴 것은 아닐까.
필자가 볼 때 한국의 바둑이 모양에 구애받지 않고 전투적인 까닭은 제한시간이 짧다는 점과 덤이 일본보다 1집이 많은 6집반인데 원인이 있다. 그러한 조건에서는 돌이 신랄하게 부딪치지 않을 수가 없다.
모양과 실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모양 감각 없이는 실전적 안목도 없으며,모양의 추구 자체가 실전에서 강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적 산물이다.
기보를 보자. 누가 둔 것일까? 전투적이고 모양을 무너뜨리는 듯한 진행. 1990년 이후의 한국 바둑인가? 아니다. 1952년 다카가와 8단(흑)과 하시모토 우타로 8단의 혼인보(本因坊)전 도전 제5국이다. 흑3 끊음은 얼마나 치열한가. 흑1 흑3 흑7과 흑돌(▲)의 모양이 두 개의 빈삼각을 이루니 차마 생각도 하기 싫은 수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행마가 부드러워 평명류(平明流)라 불리는 다카가와 8단이건만.
바둑은 언제나 치열했고 승부는 언제나 실전을 무대로 했다. 한국류라는 말에 마치 우리만의 깊은 세계가 있다고 혼동해서는 안된다. 세계화 시대에 자신도 모르게 자아를 붙잡으려는 충동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말이다.
(2003-12-18 문용직 프로5단 사이버오로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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