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큣대로 돌려버려
당구장 10대의 다이(坮)는 빈 곳이 없다.
금요일 저녁 이어 일반인들도 많지만 고속버스터미널의 기사복장의 일행들이 많다. 대기시간에 동료들끼리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할 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할 지 10분만 기다려도 될 지 알 수 없어요.”라며 카운터의 사내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한다. 얼마나 기다리면 되겠느냐는 질문도 머쓱하지만 대답도 멋 없기는 마찬가지군.
불경기라더니 가는 곳마다 꽉 차 있는 것은 이상하기도 하다.
조금 전 식사한 오리 집은 예약을 안 하고 온 것을 특별히 받아준다는 듯이 대신에 간판 메뉴인 오리 황토구이는 한 시간 이상 걸리니 기다리든지 포기하고 아무것이나 먹으라는 식 이었는데 한 마리 55,000원씩이나 받는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손님은 큰 식당에 가득 차 있다.
두 마리에 소주 맥주 몇 병을 곁들이면 거금인데 밥 한 번 같이 먹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그리 큰 것일까?
소장과 관리자들 그리고 경리 모두 다섯이 식사를 했다. 의료정보 부문의 당사 인원6명을 추가 입찰 제안을 받아 응찰하곤 그쪽 책임자와 협의를 하는데 “상도의도 없느냐? 그 따위로 하느냐?”라는 무례한 언사에 참지를 못하고 책상을 내리친 것이 마침 볼펜이 부서져 상대는 보안요원까지 불렀단다. 우리 쪽은 본사에서 높은 이들이 금새 달려왔었다.
“오늘 옷 벗는 줄 알았어요.” 얼굴이 다소 상기된 채 웃으며 예기하는 소장은 참을성이 강한 스마트한 젊은 멋쟁이 인데 오죽했으면 그가 그랬으랴 싶다.
술 한 잔에 잊어버리고 당구 큣대로 돌려버려 원위치 시켜야겠지.
그렇지만 내심 불안한 구석을 떨칠 수 없기도 하다. 소장에게 무슨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덩치가 커서인지 안주와 술의 식탐도 큰 박 반장은 이제 배를 채웠는지 내게 귀엣말을 건넨다.
자신이 특별히 자리를 만들어서 젊은 직원들이 잘 따르게 만들어 줄 테니 앞으로 협조를 잘 해보자는 예기인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술 사주고 밥 사줘서 잘 따르게 만든다면 경우가 틀린 것이고 박 반장을 따르는 젊은이들은 내 지시에는 의도적으로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인지? 특정인원들만 O/T(오버타임 근무)를 시켜 봉급이 거의 두 배 차이가 나게 된 것을 원칙과 형평에 맞게 고루고루 배분하는 내게 봉급이 깎일 일부가 반발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려니 했더니 욕 먹지 말고 술 먹고 계속 잘 봐주라는 것인지 술 맛이 싹 달아난다.
투입 3개월째 임에도 셋업이 불안한 부분이 많아 관리자들의 역할조차 매뉴얼을 작성하여 순환근무 할 것을 제안했는데 소장은 경황이 없으실 듯 하고 박 반장은 본질을 모른 채 자신이 잘 하는 줄 알고 있나 보다. 목소리 크고 나서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밀려 특근은 신청조차 한 번 못해본 젊은 직원이 주말 근무의사를 묻자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빨리 집에 가서 처에게 묻고 싶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에서는 옳지 않다고 하던 적이 많았다.
그저 나서지 말고 남들 하는 대로 하고 술 먹고 밥 먹으며 친한 척 하면 되는 것일까?
간호행정의 직원들은 예리한 사람들이다.
9명 야근직원의 업무량을 근거 첨부하여 제출하라는 지시에 소장은 걱정이다. 나는 지난 주 처음 나이트 근무를 해보니 문제점이 많아 지적해 순환근무를 제안한 것인데 현명한 소장은 즉각 이해를 한다. “그래서 간호부 회의 때 지적을 한 것이네요.”
내기 당구라며 다시 술자리로 향하는 이들의 뒤 켠에서 전철역에서 소장에게 인사 드린다.
“저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녜 그러세요.”
웃으며 인사하는 소장에게 애틋한 마음이 든다. 설마 이게 마지막 회식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
전철로 마을 버스로 12시 넘어 도착한 동네.
다리는 천근만근 무겁지만 마음 한 구석이 무거운 것에는 비할 바 못 된다.
이제 회사 일은 싹 잊어버리고 스위트 홈을 올려다 본다.
위에서 다섯 번 째 아파트 베란다의 불빛이 환하다.
이 사람이 잠을 깨고 기다리고 있나 보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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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팔공선달
바티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