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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일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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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城碁譜 - 어성기 제도의 선물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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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圖書 일기(9월 6일) - 御城碁譜 - 어성기 제도의 선물 둘
밤이다. 8시 10분.
오늘 응씨배 준결승전은 대단했다.
그토록 험악한 바둑이 다 있던가. 내 어깨가 결릴 정도다. 나는 내 인생을 바둑에 걸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나는 승부사 체질은 아닌 것이다.
프로의 눈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본 적이 있다. 그렇다. 본 적이 있다. 누구나 그리고 그 누구나도 프로의 눈을 항상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프로가 프로의 눈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다. 그도 아니다. 어떤 프로도 항상 프로의 눈을 가지고 바둑에 임할 수는 없다. 그런 것은 바보짓이다. 그래서 스스로 안다. 그런 바보짓을 안 한다. 왜냐? 항상 그리 한다면 못 견딘다. 정신도 몸도 마음도 못 견딘다.
어성기 제도의 선물이 하나 더 있다.
바둑의 진보 말고 또 하나 더 있다.
바둑의 자화상.
바로 그것을 그린 것에 어성기 제도는 기여했다.
1985년 어느 선생이 나에게 물었다. 바둑에 인생이 담겨 있느냐고. 나는 답했다. 그거야 찾을 수 있는 사람, 또는 그렇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담겨 있을 거라고. 나는 지금도 그리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바둑이 무엇이냐? 질문을 할 때 그 답 또한 다르지 않다. 그건 우리가 그리기에 달렸다.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自性이 없다. 좀더 바른 이해로는 自性이 없는 것만이 스스로 존재한다. 그것을 우리는 自然이라 부른다.
바둑은 스스로 존재하는가?
글쎄다.
바둑이란 것을 우리가 발견했는가? 아니면 만들었는가.
글쎄다.
어성기 제도는 그에 대한 하나의 조건을 제시했다. 어떤 조건이냐? 바로 어성기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그래서 바둑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바둑의 자화상이 바로 그 때 일부 세워졌다. 물론 그것은 그 이전에 있던 바둑의 자화상에 덧칠을 했을 정도일 수도 있고 새롭게 전혀 다르게 그렸을 수도 있다.
여하튼 했다. 어성기 제도는 바둑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것이 바로 제도의 의도하지 않는 결과이다.
모든 제도는 일종의 동원 動員 mobilization을 가져온다. 동원이라…
내가 정치학을 약간 아니 정치적 동원에 대해서 하나만 예를 들자.
동원이란 근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만든 개념 중의 하나인데, 근대화를 단순히 경제성장이라고 치환하자. 그러면 이렇게 된다.
경제성장이 있다. 성장을 위해 교육의 내용이 달라진다. 사람들의 직업이 바뀐다. 利害의 내용이 변한다. 이해관계가 변한다. 거주지를 옮긴다. 기존에 살았던 장소 시간대에서 다른 장소 시간으로 이동한다. 의식이 변한다. 태도도 변한다. …
정치적 동원이란 그래서 이렇게 정의된다. 정치적 의식과 태도가 바뀌는 과정.
선거에 돈을 뿌려서 투표장에 데려가는 것도 예비군 훈련에 차출되는 것도 다 동원이란 이름을 붙이지만, 그럴 때의 개념은 그럴 때의 의미일 뿐이다.
보다 폭넓게 사회 현상을 이해하려면 동원이라는 개념을 넓혀서 쓰면 좋다.
제도란 무엇인가.
편견의 동원 mobilization of bias
바로 그것이다. 제도란 그런 것이다. 그 활동이 있다면 제도는 움직이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제도는 소멸했거나 활동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쓰이지 않는 것이다.
어성기 제도란 그러면 무엇을 가져오는가.
바둑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렇다. 실제로 바둑사를 살펴보면 가져왔다.
그렇게 그린 것이 무엇인가.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이 어떤 자화상인가.
어성기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 - 이는 조건에 해당된다 -이 있었다.
가문의 長과 후계자, 또는 7단 이상.
머리를 깍을 것. 바둑의 4대 가문은 모두 淨土宗과 日蓮宗 계열에서 출발했다.
그로부터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가.
고독한 수도자의 이미지. 바로 그것이다.
내기 바둑을 두어도, 기원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막되먹은 바둑을 두더라도, 길가 평상에서 웃통을 벗어던지고 발가락으로 바둑을 두더라도,
그렇게 두어지는 바둑에서도,
그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벗어날 수 없다.
고독한 수도자의 이미지. 그 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왜냐? 바둑은 홀로 앉아서 사색하고 결정하는 그 행위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성기 제도는 그 점을 좀더 뚜렷이 부각시켰을 뿐이다. 명시적인 사회적 동의를 얻는 기초를 주었을 뿐이다.
그래, 주었다.
以上이 어성기 제도가 바둑에 준 두 번째 선물이다.
밤에 홀로 일어나 앉아 있는 자, 바둑을 둘 때의 자신과 무엇에서 차이가 나는가.
밤 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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