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제목은 내가 어린시절 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의 제목입니다. 물론 흑백 영화구요 제 나이 열다섯에 본 영화입니다. 제가 왜 이 영화 이야기를 하느냐구요? 그 시절 참으로 어렵게 살던 시절이구요 1966년이니까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미국과 일본에서 돈을 꾸어다가 살던 어렵던 시절이지요.
저는 그당시 중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집안 형편으로 인해 우리 아버지가 중학교를 보내 주지 않아서 ,강의록으로 중학교 과정을 독학 하던 시절이였고, 한참 바둑에 빠져있던 시절이였으며 내가 졸업한 국민학교에 사환으로 월급 천원을 받고 일하던 그런 시절이였습니다.
그 당시 그영화는 참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빼내는 슬픈 영화였습니다. 나이를 저만큼 드신 분들은 혹 그영화를 보셨으면 기억 하시리라 믿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절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꼭 잘살아야 겟다고 다짐 했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어려운 집안 살림 때문에 생활 전선으로 내몰린 저는 노동판을 전전 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병역을 마칠 때 까지도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노동판에서 일을 하면서도 저는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해야겠다. 손에서 놓았던 책을 다시잡고 그야말로 주경야독을 하였더니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합격하였습니다. 그게 1976년도의 일입니다. 제나이 25세가 되던 해였지요. 그 다음해에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공직생활이 이제 8개월 하고도 보름정도 남았군요 올 12월 이면 공로연수 일년을 들어갑니다.사실상의 퇴직이지요.
어린시절 슬플 때는 하늘을 쳐다 보았습니다. 1975년도에 노동판에 다니면서 채석장에서 일할 때 제 옆에서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려서 일하던 인부 한 사람이 엄청나게 큰 바위에 깔려서 죽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 시체를 가마니에 싸서 리어카에 싫고서 후송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어릴 때 하늘이나 지금의 하늘이나 하늘은 변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자꾸만 변해 가는군요. 정이 없어지고 각박한 인심만 남아서 이웃을 두려워 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곳 시골은 아직도 이웃간에 정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배움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방송고등학교와 방송대학을 다녔습니다. 십년만에 방송대학을 졸업하고 학사모를 쓰던 날 마음속으로 많이도 울었습니다.
저는 불효한 자식이 된채 아버지 어머니는 이미 저세상으로 가신지 오래이고 이제 하늘을 쳐다보면서 또 생각을 해봅니다. 내게 나작이라는 글판에서 참으로 마음 가득히 정 많은 형과 아우들을 만나게 해주신 하느님의 배려를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어린시절엔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있었지만 지천명을 한참이나 넘긴 이제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그런 날들이 남아있는 우리의 삶속에 충만하여 지기를 바랍니다.
용마성님, 그리고 여러아우들(도리, 이청,선달이,소라, 영바모. 민식이, 저니, 3쿠션) 또 나작에서 만난 여러 기우여러분. (원융무애님, 술향기님, 홍선비님, 당근돼지님, 이쁜바둑돌님, 은하님,수목나라, 밤강물,체리통)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명을 거론하지 못한 기우님들 용서하이소 제가 머리가 나쁜 관계로.............
제가 퇴직후에는 아마도 여러분을 찾아가서 쐬주 사달라고 괴롭힐 예정이오니 겁나시면 미리미리 돈좀 저축해 두시길 바랍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졸리네요 안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