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追憶
선비만석
오늘이 節氣상으로는 雨水이다. 우수에는 얼어붙었던 강물이 녹고 새싹이 돋는다는 계절인데, 아직 눈 덮인 산과 들에 눈 밑에서 용트림을 하고 있을 새싹의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저 멀리 부산은 매화꽃이 피었다는 봄소식을 전하는데, 여기 동해안 최북단 휴전선 밑은 봄이 오려면 조금은 시간이 걸려야 하나보다.
예전 농업이 사람들의 주된 일이였을 때는,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은 봄이 춘궁기라 하여 배고픈 시절로 기억되지만, 요즘처럼 먹을 것이 풍부한 시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배고픔을 모른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봄은 쌀 떨어진 우리 집에서는 부모님의 고생이 말 할 수 없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산으로 칡을 캐러 다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어머니는 누님과 쑥을 캐었고, 칡을 캐어서는 갈아서 녹말을 내어서 칡 떡을 해먹었는데 참 맛이 있었다. 쑥은 캐어서 쑥떡을 하거나, 아니면 밀가루에 버무려서 쪄서 먹었는데, 지금 아이들에게 그런 음식들을 먹으라고 하면, 먹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요즘 아이들이야 인스턴트식품인 라면이나, 스파게티, 피자등과 수많은 과자와 빵들에, 입맛이 길들여 있어서 웰빙 음식을 찾는 시대라지만, 아마도 예전처럼 보리개떡이나 쑥떡, 칡 떡, 송구 떡 등을 먹으라면 안 먹을 거라 생각한다. 요즈음 나는 꽈배기와 찐빵을 가끔 사먹는다. 주전부리 하느라 그런 것이 아니라, 퇴근 무렵 농협을 지나치게 되는데, 농협 담벼락에 천막을 치고 찐빵과 꽈배기를 파는 할머니가, 꼭 예전 우리 어머니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내 딴에는 할머니 찐빵을 팔아드린다고 이천 원 어치를 사서 비닐봉지에 담아서 가지고 들어오는 날은, 그것을 먹고 나면 배가 불러서 저녁을 못 먹는다.
요즈음은 춘궁기라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래도 봄이 되면 아낙들과 처녀 아이들이 들판에 나가서 냉이와 달래를 캐는 모습이 정겹다. 3월이 되면 산의 눈도 다 녹을 것이고, 달래와 냉이를 캐어서 냉이 국을 끓이고 달래 무침을 하여서, 봄의 미각을 맛보는 그런 일이야 농촌에서나 가능하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이야 돈만 있으면 마트에 나가면 없는 것이 없으니, 달래와 냉이도 들에서 캐는 것이 아니라 농군들이 재배한 것을 사서 끓여 먹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내가 직접 캐어서 자연 그대로의 미각을 맛본 것에 비하랴.
건강이 점차 좋아지고 있으니 봄이 오면 배낭을 짊어지고 들판으로 나가서 냉이와 달래를 한번 캐어 보련다. 같이 갈 동무는 없지만, 혹시 어여쁜 아낙과 봄볕 따사로운 들판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오려는지 사람일이란 아무도 모른다. 여하튼 추운 겨울은 서서히 지나가고 볕은 제법 따사롭다. 봄이 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 같다.
울타리의 노란 개나리꽃들이 만발 할 때쯤이면, 봄 내음 가득한 냉이 국을 먹으면서 달래무침의 그 향기 속에 취해서, 봄 처녀 오시는 곳을 향해 눈시울을 붉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