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活妙手
선비만석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하필 오늘 비가 올게 뭐람. 준식은 비가 와서 모처럼 등산을 가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자 기분이 찝찔했다. 아내는 모처럼 준식과 등산을 가려고 새벽부터 들뜬 마음으로 김밥을 싸고 배낭에 등산모에 등산화를 챙기는 등 분주를 떨었으나 아침을 먹는 도중 시작하여 떨어지는 빗줄기에 오만상이 찌그러지더니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죄 없는 준식에게 화풀이를 해대었다.
“당신이 받은 날이 그렇지.......하필이면 비 오는 날을 받아요. 일기예보라도 미리 좀 보지”
“누가 비가 올 줄을 알았나. 제길 가수 비나 오면 기분이나 째지지........”
“그걸 개그라고 하는 거유.......에이구 내가 저 인간을 믿고 등산을 가려고 한 것이 잘못이지 내 팔자에 등산은 무슨........”
마누라 입에서 팔자타령이 나오기 시작하자 준식은 슬그머니 일어나 우산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섰다. 괜 시리 집안에서 마누라와 입씨름을 해봤자 좋은 소리 나올 일도 없을 테고 이럴 때는 차라리 기원에 가서 바둑이나 한판 두는 것이 나을 듯 하였다. 동네 버스정류소 근처 건물 삼층에 있는 기원에는 준식이 일주일에 서너 번 들려서 방내기를 하는 곳이니 어찌 보면 준식의 아지트 같은 곳이기도 하다. 준식이 기원에 들어서자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기원은 한산했다. 원장이 준식을 보자 반긴다.
“아니, 오늘 등산 간다더니.........비 오는 바람에 못가네....... .
“말도 마슈........그놈의 비 때문에 마누라 에게 바가지만 긁히다 왔우.”
“그러게 날을 잘 잡아야지.........”
“안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모처럼 마누라 기분 맞추어 주려는데 비가 나를 안도와 주네요.”
“마누라 기분이야 등산 말고 다른 걸로 기분 나게 해주면 되지.”
“여자들 기분이야 이랬다저랬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덕스럽게 바뀌는데 그걸 무슨 수로 맞추어요.”
“거참, 여자들이야 단순하지 오늘 점심을 근사한 곳에서 한번 사드리게나.”
“여편네 비위 맞추려다 지갑이 거덜 나겠네.......”
“안 죽고 살려면 여자 비위를 잘 맞추는 것이 잘하는 짓 이라고 하더만.”
“에이 ........ 어쨌든 등산을 못 갔으니 다른 걸로 때우긴 해야겠죠.....”
준식은 방내기나 할까하고 기원엘 갔었으나 원장의 말도 일리가 있어 마누라의 기분이나 오늘 째지게 해주는 것이 좋으리라 싶어 다시 기원을 나섰다. 비는 아직 부슬거리며 내리고 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어느새 오전 열한시가 조금 넘었다. 준식은 핸드폰을 들고 아내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기실 오늘이 아내와의 결혼기념일 이였기에 아내와 등산을 가기로 계획한 일이 틀어졌는데 아내의 기분을 나몰라 하고 기원으로 나온 것부터가 준식의 잘못 이였다.
아까부터 핸드폰이 울려 대었다. 하필이면 아침부터 비가 올게 뭐람 그것도 결혼기념일이라고 모처럼 등산을 가기로 작정한 것인데 남편이란 작자가 워낙 무드 없이 사는 사람이라 며칠을 두고 닦달하여 등산을 가기로 한 것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오늘 비가 온단 말이냐. 기분 상하여 속 알머리 없는 남편에게 한마디 하였더니 이 작자는 휑하니 밖으로 나간 것이 아마도 또 기원에나 죽치고 앉아서 방내긴지 뭔지에 빠져 있을게 뻔한 일이다. 기분이 상하여 핸드폰이 울려도 받을 기분이 안 났으나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이 귀찮아서 핸드폰을 받았더니 속 알머리 없는 남편이다.
“여보세요.”
“왜요?!”
“이봐 옷 입고 좀 나와”
“비 오는데 왜 나오라고 ......”
“나와 보면 알거 아니야”
“어디로 나오라는 건데.......”
“명동에 준 이라는 레스토랑 있잖아. 그리로 와”
“갑자기 웬 레스토랑이람........당신 미쳤우?”
“이 여편네가....미치긴 누가 미쳐....빨랑 나와”
전화가 끊어졌다. 속 알머리 없는 쫌 씨가 웬일로 레스토랑이람 연애할 때 딱 한번 가본 적이 있어서 알긴 하지만 그 집의 스테이크는 맛있긴 한데 너무 비싸서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안심 스테이크 일인분에 오만원인데.......오만원이면 삼겹살이 몇 근인데....우리 식구 모두가 포식을 할 수 있는데 거기다 쫌 씨랑 둘이 먹으면 거금 십 만원이나 없어지는데 아마도 이 쫌 씨가 제정신이 아닌갑다. 하지만 오늘은 결혼기념일인데 쫌 씨의 성의를 봐서라도 나가야 할 것 같다. 안 나가면 나만 손해 볼게 뻔한데 왜 안나가리. 후다닥 모양새를 좀 내고 화장도 모처럼 찐하게 해 변신을 시도했다.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명동으로 향했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오늘 마누라의 기분을 안 풀어 주면 바둑 두다 사활이 걸린 기분일거 같아서 찜찜해지기 전에 기분을 풀기로 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 여우같은 아내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다보니 얼굴에 덕지덕지 분칠을 한 여자 하나가 들어온다. 한데 입술은 그게 뭐람 핑크색 루즈를 발라서 묘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싱글 웃으면서 들어서는 걸 보니 오늘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인심 쓰기로 한거 크게 인심 쓰자 생각하였다. 안심스테이크에 적포도주 한잔씩을 시키고 식사를 시작 하였다. 아내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말도 안하고 스테이크를 썰고 먹고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봐, 좀 천천히 먹어라. 생전 고기구경 못해본 사람처럼 그게 뭐냐!”
보다 못해 한마다 하였으나 아내는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후다닥 스테이크 한 접시를 비웠다. 그리고는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포도주잔을 들고 살살 돌리면서 코에 대고 냄새를 맡으며 한모금 홀짝거렸다. 그 틈을 타서 나는 주머니에서 선물을 하나 내밀었다. 비상금을 톡톡 털어서 모처럼 장만한 것이긴 했다. 여우같은 아내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이게 뭐유?”
“뭐긴 뭐야......산에 가서 주려고 했는데.....비가오니 여기서 주는 거지”
아내가 선물 상자를 열었다. 진주 목걸이가 나오자 아내의 입이 쩌억 벌어지더니 다물어 질줄 모른다. 엄청 감동 먹었나 보다.
“이리 줘봐.....”
준식은 아내에게서 목걸이를 받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등 뒤로 다가갔다. 미장원에 가는 돈이 아깝다고 나이 사십이 넘어서도 생머리를 하고 다니는 아내의 생머리가 오늘 따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너무도 이뻐 보였다. 아내의 목에 진주목걸이를 걸어주자 아내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 준식은 떨리는 아내의 어깨가 안쓰러워 가볍게 안아주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내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이거 엄청 비쌀 텐데....... 당신 돈이 어디서 나서.......”
“거참......돈 타령은 ......당신이 준 용돈 좀 아껴 쓰고 남은 거지......”
준식은 아내의 얼굴을 마주 보기가 계면쩍어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깔며 말했다. 답답하던 가슴에서 시원하게 무언가 터져 나왔다. 마치 다 죽어 가던 대마가 묘수 하나로 살아나듯이. 그렇게 시원해지긴 너무 오랜 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