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깐일기(3)
선비만석
사랑이란 이름으로 영미의 모든 것을 가지려 했던 것이 잘못인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나는 빵깐생활 십 육년이 다되어 가도록 아직 답을 찾지 못하였다. 담 밖의 세상은 얼마나 변하였을지 두렵다. 문민정부가 들어섰다는 소식을 담당 교도관으로부터 듣긴 하였지만 텔레비전도 없고 신문도 볼 수 없는 이곳 생활은 내가 세상과의 단절을 하기에는 너무도 적합한 곳 이였다. 이곳에서의 유일한 희망은 가석방이 되는 것이다. 올해 성탄절 특사로 무기에서 이십년으로 감형만 된다면 나는 내년이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자유 그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는 전엔 알 수 없었다. 빵깐에 들어오면 내가 다닐 수 있는 곳이라곤 오로지 담장안의 제한된 공간 쇠창살로 이루어진 복도와 공장, 그리고 유일하게 잠을 잘 수 있는 빵깐, 그 세 곳이 전부였다.
두렵다. 다시 세상으로 나가면 난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할지. 전 두환 군사정부 시절에 들어온 빵깐은 내가 빵깐에 들어올 무렵에 아시안 게임을 했었다. 빵깐에서 나는 88서울올림픽을 간간히 테레비를 통해서 보았다. 그동안 집권당은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뀌었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를 지나서 참여정부가 들어섰다. 그동안 여러 차례 감형이 되기를 기다렸으나 매번 나는 제외 되었다. 이번 광복절이 내겐 너무나도 중요하다. 광복절 특사에서 감형이 되기만 한다면 나는 세상구경을 할 수 있다. 세상에 나가면 어머니에게 그동안 못한 효도를 하여야 할 것이고 또 나의 손으로 세상을 하직 하게한 영미의 묘를 찾아볼 것이다. 사죄하고 싶다. 나의 못난 자괴감 내 스스로를 망쳐먹은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난 나를 보여주고 싶다.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은 언제일까? 나는 수없이 고뇌하고 자문해 보았다. 행복한 시간은 영미와의 함께한 시간 이였다. 그릇 몇 개와 두벌의 수저 월세 삼 만원인 단칸방에서 살을 맞대고 라면을 끓여 먹었어도 우리는 너무 행복했다. 눈이 마주치면 영미는 항상 깔깔대고 웃었다. 나는 그런 영미가 한없이 좋았다. 그녀의 웃음을 들으면 하루 종일 행복했다. 그런 생활을 일년여쯤 하였을 무렵 영미의 어머니가 우리를 찾아왔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 이였다.
“이런 날건달 같은 놈!!, 남의 귀한 딸을 꼬드겨 살림을 차려, 나는 너 같은 날건달에게 우리 영미를 줄 수없어.”
영미의 어머니는 분노에 치를 떨며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모질게 우리의 사랑을 반대하셨던 그분도 영미가 아이를 낳자 그만 우리를 인정해 주셨는데 영미는 왜 무엇 때문에 나를 떠나야 했을까? 영미가 직장을 다니면서부터 돌을 갓 지난 우리 아이는 어머니가 맡게 되었고 나와 영미는 희망을 가지고 맛 벌이를 하면서 미래를 설계했다. 나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면서 행복했다. 공장에서 나의 정비 실력을 인정해 주었고 나는 내 공장을 가질 때 까지 죽어라 일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앞날을 악마가 시기한 때문일까. 영미가회사일로 한두 번 늦어지기 시작하더니 야근이다 뭐다 하면서 점점 늦어지는 횟수가 증가하자 나는 마음속에 영미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있었다. 영미가 늦어지기 시작하면서 영미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영미의 머릿결에서는 담배냄새가 진하게 배여 들어왔다.
“아니, 영미 씨 담배 피워?!”
“누가 담배를 핀다고 그래요.”
“근데 왜 머릿결에서 담배 냄새가 나지....?”
“사무실 남자직원들이 담배를 피우니 그렇죠.”
“그런 거야.......난 담배 냄새가 머리에 배어서 .......”
“미안해요.....”
“아니, 그리고 야근하면 술을 마시나....?!”
“부장님이 고생했다고 야근 끝나면 한잔 하고 가자는데 어떡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당신은 주부고 애 엄마야.”
“자기가 이해해요.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처음은 이렇게 순조롭게 넘어갔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 이였다. 내가 자주 말을 꺼내자 영미의 입에서 심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럼 내가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되게 자기가 돈을 많이 벌던지........”
나는 영미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자 광분했다. 그날 나는 집에서 뛰쳐나와 집에 들어가지 않고 외박을 하였다. 밤새 친구와 술을 마신 나는 공장도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남산에서 보냈다. 결국 모든 것은 돈이 문제였다. 돈을 벌어서 행복하게 해주겠다던 내가 자신을 직장으로 돈벌러 내보낸 것에 대해 영미는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직장을 나가겠다고 한 것은 영미 자신이 아니었던가. 나는 영미의 진심이 무언지 혼란스러워 졌다. 하루 종일 남산을 헤맨 나는 그래도 영미에게 미안해졌다. 영미에게 사과도 하고 맛있는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나는 영이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영미의 사무실 근처에서 영미를 기다렸다. 영미는 퇴근시간이 한참을 지났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퇴근 시간을 두 시간 이나 넘길 무렵 영미가 나왔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영미가 웬 남자와 나란히 나오자 일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영미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영미와 사내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대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회사에서 한참을 걸어 어느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등심을 시켜놓고 먹으면서 소주를 맛있게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나는 배고픈 것도 잊어버리고 두 사람의 하는 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영미가 말하던 부장인가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은 외박을 하였지만 걱정도 안 되는지 영미는 연신 술잔을 비우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식사가 끝나기 까지 두 시간이 넘도록 나는 배고픔을 참으면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마음속에 갈등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영미의 행동이 하나하나 되짚어 보게 되었다. 저 사람은 아무리 부장이라도 거의 매일같이 영미와 저녁 식사를 한단 말인가. 마음속에서 자꾸만 의문이 꼬리를 물고 끓어올랐다. 그들은 식사를 마치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영미에게 택시를 잡아준 사내는 영미와 동승하여 차를 타고 나의 눈앞에서 휭 하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