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毒(3)
선비만석
“이봐, 김 사장 요새 왜 그리 힘이 없어”
원장이 보다 못해 김씨에게 한 마디 던졌다. 기원에 나와서 쭈그리고 앉아 멍하니 먼 산만 쳐다보는 김씨가 안타깝게 느껴진 원장은 김씨에게 꾼들이 모이는 장소를 가르쳐 주고도 싶었으나 김씨 부인이 절대로 도박 같은 거 못하게 도와 달라고 신신 당부 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사는 것이 왜 이리 재미가 없나 몰라.”
“아, 재미야 나름대로 만들면 되는 거지 누군들 재미있는 일이 매일 같이 있나.”
“요새 다들 어디로 잠수 탄 거야. 나는 도통 끼어 주지도 않고.......”
“김 사장 끼어 주다가 또 파출소에 끌려갈 일이 있나 그러니 모두들 김 사장 안 끼어 준다고 자기들 끼리 어디 다른데 가서 노나 보지”
“젠장 도대체 내가 끼면 왜 파출소엘 간다는 거야.........”
“아 저번 참에 김 사장 가버리고 난 뒤로 파출소에 모두들 끌려가서 각서 쓴 거 몰라.”
“그게 왜 내 탓이야.”
“여하튼 김 사장이 나가자마자 파출소 직원들이 들이닥쳤으니 모두들 김 사장을 의심하나봐. 그 왜 오비이락 이라고 의심도 받을 만 하지........”
원장은 그래도 김 사장의 마누라가 파출소에 신고한 얘기는 아예 김 사장에게 하지를 않았다. 성질 더러운 김 사장이 그 사실을 알면 마누라를 개 패듯 할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아예 모르는 게 약이다.
“아. 내가 파출소에 고자질 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그렇다고 나만 쏙 빼고 자기들 끼리 놀면서 나를 왕 따를 시키나 그래.”
“그렇게 궁금하면 부동산 하는 송씨네 가게에 가봐 거기서들 자주 모이는 모양이던데”
“진작 가르쳐 주지 원장도 가만히 보면 사람 속 끓이는데 뭐 있어...”
김 씨는 원장의 말을 듣기가 무섭게 기원문을 나섰다. 세상일이 사람마음 대로는 되지 않지만 이놈의 도박판도 마찬가지다. 돈을 딴다 싶으면 사람의 마음에 갈등이 일고, 잃었다 싶으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니 이런 것이 도박중독인 셈이다. 김 씨 마누라도 김씨가 성정이 미적지근한 사람이라 쉽게 도박에 중독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기원에서 내기 바둑을 두는 것이야 뭐라고 잔소리 하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밤새고 들어오는 횟수가 늘어난 남편이 수상해서 몰래 뒷조사를 하고 있던 터라 남편이 포커와 고스톱 판에 끼여서 돈을 꽤 많이 잃었다는 것을 알고는 영감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고 머리를 짜냈으나 좋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파출소 직원을 이용하여 혼 구멍을 내줄 요량 이였으나 남편이 잡혀가면 자기가 신고한 것이 다 들통 나게 되어 남편에게 호되게 당할 것이 두려워 남편을 불러내고 신고를 하였던 것이다.
부동산 사무실에 딸린 방이 하나 있었는데 부동산 송씨는 그 방을 브이아이피 손님 접대용이라고 다른 사람에게는 개방을 하지 않았으나 학원장 최씨가 어찌어찌 구워삶아서 그들의 아지트로 만들었다. 투전판 용어로 말한다면 하우스가 하나 생긴 셈이다. 그러니 기원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고 부동산 사무실 문을 닫는 시간에 그들은 그 방에 모여서 도박을 하는 것이다. 그들이야 그저 시간보내기 좋은 일종의 취미이지만 작게 시작한 판은 아무래도 크게 변질되게 마련이다. 세상에 돈 잃고 기분 좋아 할 놈은 없는 법이니 돈 잃은 사람은 그걸 복구 하겠다고 자꾸 판을 키우게 되고 돈 딴 사람은 잃어봐야 본전이니 판이 커지면 돈을 더 따서 그날 기분이 째지는 법이다.
기원에서 나온 김씨는 아직 이른 시간 이지만 부동산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동산 사무실에는 중개업을 하는 송씨가 손님과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파트를 계약 하는 모양인지 송씨는 아파트의 장점에 대해 진지하게 손님에게 소개를 하고 있었다. 요즈음 부동산 투기열풍이 사라져서 매매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데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어쩌다 이루어지는 매매 건은 소개료가 제법 짭짤한 것이니 송씨가 열을 내서 열심히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씨는 송씨와 눈인사를 하고는 좀 낡은 소파에 주저앉았다. 송씨가 손님과 계약을 끝낸 것은 그러고도 한참을 지난 후였다.
“아니 김 사장,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인가?”
“이 사람아, 내가 오고 싶어 온줄 아나. 요새 여기서 자기들끼리만 놀고 나는 쏙 빼는 이유나 좀 알아보세.”
“빼긴 누가 뭘 빼, 자네가 알아서 오면 되지.”
“오늘도 모이기로 했는가?”
“글쎄, 어제들 너무 늦게 까지 놀아서 오늘은 안 모일지 모르겠네.......”
“여하튼 모이면 내게도 좀 알려 주게. 이거 원 심심해서 살 수가 있나.”
“아 김 사장이 심심하면 어쩌나. 기원에서 내기바둑이나 두지.”
“내기바둑도 이젠 지겨워서 못하겠네. 까짓 자장면이나 먹자고 신경 쓰는 것도 지겹고.”
“자네가 바둑이 지겨울 때도 있나. 거참 세상 오래살고 볼일이군. 자네야 밥은 안 먹어도 바둑은 두는 사람이.....”
“세상 살다보니 바둑보다 더 재미있는 것도 있더군.......”
“자네 도박 좋아하다 패가망신 하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도박도 하다보면 판 커지고 거기다 타짜에게 걸려서 쪽박 찬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취미삼아 재미로 하는 건데 무슨 도박은............”
“거참 그게 문제지.....자네도 중독 증상이 슬슬 보이네.........”
“시끄럽네, 중독은 무슨.....”
“글세, 자네가 부인은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언제 모이는지 알아보려는 것이 벌써 중독인거여 정신 차리게 이 사람아.”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일랑 말고, 모이면 연락이나 해주게”
“알았네, 난 바쁘니 이만 가보게.”
송씨에게 떠밀리다 시피 부동산중개소를 나온 김 씨는 뭔지 모를 허전함에 가슴이 답답했다. 괜시리 초조한 것이 자신이 무언가 쫒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 다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양을 만나서 차라도 한잔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놈은 피자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전화도 하지 않는다.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어쩌면 그를 도박판으로 발걸음을 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도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심심풀이 시간보내기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도박을 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또한 자신은 그런 간섭을 받기를 죽어도 싫은 성격이라 어쩌면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그런 형편이다. 차라리 뭔가 하는 일이 있다면 거기에 빠져서 열심히 일할 텐데 이제 회갑을 코앞에 두고 무언가 다른 일을 시작하기에도 쉽지 않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