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선비만석
강원 영동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고 방송에서 뉴스를 내 보낸다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두 달째 병가를 내고 칩거하여 방콕에서 보내고 있으면서 세상사는 알아서 무엇하랴 마는 인간의 삶이란 세상사가 원래 궁금한 법이다. 거실의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가느다란 눈이 쉴 새도 없이 하늘에서 춤을 추며 내려온다.
춘천에 있는 집이 걱정되어 전화를 해본다. 막내딸이 받는다.
“애비다, 거긴 눈이 많이 오느냐?!”
“아니, 안와요?”
“여긴 눈이 많이 오는구나.”
“아침은 드셨어요?”
“그래 밥은 먹었다.”
“목소린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요.”
“걱정하지 마라. 많이 좋아졌다.”
그러고 나니 더 할말이 없다. 전화를 끊었다. 눈이 오니 운동도 못나가고 방안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나 그도 이내 싫증이 난다. 결국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오로바둑에 들어가 이리저리 살펴보다 어제 저녁에 쓴 시작을 보니 댓 글이 많다. 답 글도 달고 혼자 슬며시 웃어도 보면서 사람 사는 정이란 멀리 있어도 느낄 수 있음을 안다.
다시 바둑 두는 서버로 들어가 보니 친구 등록을 해놓은 팔공선달 동상이 있다. 어디에 있는지 조회를 해 본다. 반갑다. 전생에 어떤 연이 있었는지 만나서 밥도 같이 먹고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같이 갔으니 정이 듬뿍 들었다. 호형호제 하니 든든한 동생하나 생겨 좋다. 도리와 저니도 같은 연이었으니 난 참으로 인복도 많다.
도리동생이 보내준 목도리 덕분에 여기저기 선심 쓰고 인기도 올랐다. 사업도 불경기인데 웬걸 그리도 많이 보내주어서 미안하기 그지없다. 요즈음 어물도 잘 안 나서 생선이라도 보내 주어야 하는데 마음뿐이다.
어렸을 때는 눈이 오면 추운 줄도 모르고 눈사람을 만들고 비료부대 하나 들고 제방 둑에서 썰매를 타고 놀았다. 요즘 같은 겨울엔 화로 불 에다 고구마를 구어 먹는 재미가 정말 최고의 행복 이였다.
문명과 문화가 발달하여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은 화로가 무언지 모르겠지만 화로 불에 고구마를 구어 먹느라 결국 다음해 봄에 씨를 할 종자고구마 까지 구어 먹다가 아버지에게 아주 혼난 기억도 새삼스럽다.
좀 나이가 들어서는 이런 날 토끼사냥을 하러 아이들과 몰려 다녔던 기억이 떠오른다. 토끼는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길어서 아래서 위로 몰아서는 잡기가 힘들고 위에서 아래로 몰아야만 잡기가 쉽다. 동네 아이들 열댓 명이 모여서 토끼를 몰면서 산을 뛰어 다니던 시절엔 감기하나 걸리지 않았었다.
나중엔 내 위의 형님이 토끼를 쉽게 잡는 방법인 덫을 놓는 방법을 알려 주어서 저녁이면 토끼가 다니는 길에 덫을 놓으러 다니던 기억도 생각난다. 덫을 놓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토끼를 걷으러 가보면 덫에 걸려 밤새 버둥거리다 얼어 죽은 토끼를 세 마리나 걷어 와서는 묵은 김치를 넣고 두루치기를 해서 먹던 그 맛을 이제는 어디 가서 맛보랴. 요즘 산에는 토끼가 없단다. 들 고양이가 너무 개체수가 늘어서 들 고양이 들이 토끼를 다 잡아 먹어서 토끼를 구경하기 힘들다.
인간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먹이사슬이 파괴되고 자연이 파괴되면 결국 우리도 죽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메뚜기가 없는 논을 상상해 보라. 생물이 죽는 농약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치고 그 쌀로 밥을 해먹는다. 끔찍하다. 화석 연료를 너무 많이 사용하여 지구 온난화가 과하여 오존충이 구멍이 나고 해수면이 올라가고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재앙이 시작되어도 우리는 피부에 금방 닿는 일이 아니라 느끼지 못한다.
눈이 안 오는 나라도 있긴 하지만, 눈이 없는 겨울을 상상해 보라. 우리나라가 사막이 된다면 어찌 살까? 눈 오는 날 이런저런 쓸데없는 상념에 잡혀 본다. 한 발자국 만 나가면 군고구마 파는 사람이 있는데 군고구마를 사서 먹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은 눈이 오기 때문인가.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 손을 잡고 한없이 걸어갈 사람 하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나의 쓸데없는 욕심이겠지. 하지만 꿈에서 그리하는 것이야 누가 말릴 수 있나. 낯 잠을 한잠 자면서 그런 꿈이나 꿀까보다.
아직도 밖에는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아마도 내일이면 집집마다 눈치기에 바쁘겠지. 오랜만에 눈이 겨울답게 오건만 내 마음은 왜 이리 허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