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깐일기 (1)
선비만석
공장안은 몹시도 어수선했다. 날만 새면 나오는 공장이지만 오늘따라 어수선 한 것이 날씨 탓인지도 모른다. 벌써 며칠 째 궂은비가 계속해서 내린다. 담당 교도관인 최 담당이 아침 조회를 시작한다. 나는 대원들을 정렬시키고 인원파악을 하였다. 45명 정원 모두들 이상 없이 출역을 하였다. 징역을 산지가 어느새 십 오년이 넘어서 내 나이가 마흔 다섯이다.
나이 서른에 난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던 여인을 내손으로 죽였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하다는 것을 나는 그 때 알았다. 사람목숨이 질기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그렇게 한 순간에 가버릴 줄은 몰랐다. 허기사 내가 죽어라고 목을 졸랐으니 남자의 손아귀에 잡혀서 숨을 못 쉬다 죽었으니 죽은 사람의 고통이야 오죽했으랴.
“총원 사십 오명 현재원 사십 오명 이상 무.”
나는 담당 교도관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대원들을 열중쉬어를 시켰다. 최 교도관의 아침 훈시가 이어진다.
“오늘도 열심히 작업에 임해주기 바란다. 요즈음 우리 목 공장에 담배가 돈다는 애기가 있다.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징벌을 받는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겠지만 규율을 위반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기 바란다. 작업반장은 임의로 공장 밖으로 나가는 재소자가 없도록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타 공장 재소자의 출입 시 반드시 보고 하도록....이상.”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삼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것은 형법 제250조에 정해진 살인자의 처벌규정이다. 나는 살인을 미리 예모했다는 검사의 주장에 따라 무기징역을 받았다. 변호인도 선임하지 않았고 나는 국선 변호인의 무성의한 증언도 원하지 않았으며 판사에게 사형을 시켜 달라고 애원 하였으나 판사는 정산을 참작하여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선고하였다. 다들 항소 하라고 하였으나 나는 일심에서 항소를 포기하였다. 산다는 것이 너무도 무의미 하다고 느껴졌다. 여자의 배신에 대한 나의 자의적 처벌에 따른 법적 처벌은 내 몫이므로 나는 애써 그 벌을 모면하려는 치졸함을 보이기 싫었다.
난 이미 패배자였다. 사랑한다는 것 정말 죽도록 사랑 한다는 것에 대한 배신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녀는 날 정말 사랑한다고 했다. 그녀가 모든 것을 나만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믿었다. 나도 그녀만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사랑은 변하는 것이었다. 사랑이 변하지 않는 다는 말은 정말 믿을 수 없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변해가는 사랑 앞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둘이서 오순도순 살던 보금자리를 박차고 나간 그녀를 찾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헤매던 시간은 일 년의 노력 끝에 결실을 맺었다.
작업이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망치질 소리 기계톱 돌아가는 소리가 공장안을 시끄럽게 한다. 담당인 최 교도관은 아침 점호 준비를 하라고 지시를 한다. 관구공장 저쪽에서 번호를 외치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관구부장인 박 부장이 마치 임신한 듯한 배를 앞으로 내밀고 공장으로 들어선다.
“총원 사십 오명, 현재원 사십 오명, 이상 무”
담당 교도관이 인원 보고를 하자 우리 대원들이 번호를 힘차가 외친다. 사십 오번이 번호 끝을 힘차게 외치자 관구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공장으로 갔다. 점호가 끝나자 이내 아침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지겹도록 먹는 콩밥이 싫어질 때도 되었으나 사람의 관습이란 참으로 무섭다.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배가 고파진다. 취사부들이 리어카에 밥을 싣고 공장으로 온다. 사십 오명이 먹을 밥은 취사장에서 쪄서 나온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허연 콩이 섞이고 보리쌀 반 쌀 반인 이밥을 나는 십육 년이나 먹었다. 헌데 이 밥맛에 익숙해서인지 모르지만 흰 쌀밥 생각이 나지 않는다. 콩이 있어서 그런지 늘 구수한 밥맛에 거기에다 고추장과 버터를 넣고, 비벼 먹는 맛에 길들여진지 오래이다. 가끔은 식당에서 사식으로 자장면이나 짬뽕을 시켜서 먹기도 한다. 이놈의 빵깐은 일제시대에 지어진 붉은 벽돌의 깜빵이다. 들은 얘기지만 일제 시대에는 많은 애국지사들이 고문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내 청춘을 보낸지가 십오년이 지나 십육년째 되었으니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