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대접
선비만석
“아니 여직 주무세요?! 어서 일어나 아침 드세요!”
비몽사몽 꿈속에서 헤매는 나를 누군가 흔들었다. 감기는 눈을 겨우 뜨고 바라보니 아내였다. 아내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자기를 쳐다보는 내가 한심하게 보였는지 혀를 끌끌 차며 이내 문밖으로 사라졌다. 아내가 나간 뒤로도 한참을 멍하니 천정을 쳐다보며 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겨우 몸을 추슬러 일어났다. 어젯밤 송년회라는 년 중 행사에 과음한 탓인지 몸은 천근만근이요 머리는 깨질 듯 쑤셔 대었다.
송년회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지만 과음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다가도 분위기에 쉽게 휘말리는 나의 천성 탓에 나는 내 나이를 잊어버리고 과음을 하기 일쑤였다. 회사의 중견간부인 부장이라는 직책에서 더 이상 올라갈 자리도 없고 곧 밀려날 처지인 사오정 세대인 내가 몸은 생각하지 않고 맨 날 술에 절어서 들어오니 아내인들 술국 끓이는 일보다는 그런 내가 한심하게 비쳐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남들은 상무자리에 척척 진급을 하여 상무님사모님 소리를 듣는데 자신은 10년이 넘도록 부장님 사모님에 정체되어 있으니 사람 욕심이야 거기서 거기가 아니던가. 게다가 사오정이 되기 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사업을 차려서 성공한 아내의 친구들은 남편 덕에 사장님 사모님 소리를 듣는 사람도 몇 있으니 아내의 심기가 요즘 들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송년회 모임에 나가면 듣는 소리가 뻔한 것일 테니 말이다.
“얘, 너의 남편은 아직 부장이니?!”
며칠 전 아내가 동창들 송년회 자리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내게 던진 이 한마디가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 뒤로는 내가 송년회 자리에서 술을 더 마시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회사에서 부장 자리에 가장 오래 머물게 된 것이 내 잘못은 아니다. 회사의 사정이 그러해서 상무자리로 승진을 할 수 없으니 난들 어쩌겠는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하는 나의 걸음걸이가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아직 술이 덜 깬 탓 일게다. 식탁으로 다가가는 내 콧구멍 속으로 구수한 북어 국 냄새가 솔솔 들어와 허기지고 쓰린 내 위를 자극했다. 아내는 커다란 국 대접 한 가득 북어 국을 담아내었다.
나는 고춧가루를 듬뿍 집어넣고 휘휘 저어서는 한 수저를 퍼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구수한 북어와 콩나물의 조화로 이루어진 시원함이 위를 적시자 쓰린 위가 평안해 진다. 검은콩이 드문드문 석인 현미밥을 한 수저 퍼서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요즘 조금씩 비만이 더해가는 나를 생각해서 아내가 지어놓은 밥이지만 흰 쌀밥에 익숙한 내 혀는 거부감을 느낀다. 사람이란 참 간사한 종족이다. 그나마 이러하게 대접을 받는 것도 직장이라고 다니고 있으니 망정이지 직장도 없는 남편들이 아내에게 어떤 대접을 받을지는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휴일이라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다시 침실로 들어와 골아 떨어졌다. 쉬는 것이 보약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월요일 출근길이 편하게 느껴진다.
조용하다. 아무런 기척도 없는 이 고요함은 무엇일까? 깊은 잠에 떨어져 있던 내가 눈을 뜬 것은 오후 두시가 넘어서였다. 꿈속에서 나는 숙적 S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내 대마가 양패에 걸려 몰살을 하는 기분 나쁜 꿈 이였다. 집안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오늘은 분명 12월 29일 토요일 인데 이리도 조용할까. 내가 꿈을 꾸고 난 탓인지도 모른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프던 머리도 한결 맑아졌는데 집안이 너무 조용하다.
“이봐, 어디 있어?!”
아내를 불렀다. 아무 대답이 없다. 갈증을 느끼는 목이 시원한 물 한 그릇을 원하여 아내를 불렀으나 집안이 마치 정적에 갇힌 듯 인기척 하나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모두들 어디로 간 것인가? 식구라곤 아내와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딸, 단 네 식구이긴 하지만 모두들 어디로 간 것일까?
조용한 집안에 혼자 있다는 것은 뭔지 모를 불안감 같은 것이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은 들에 일하러 나가시고 내 위의 누님이 학교에 가고 나면 난 조용한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잠꾸러기 이던 나는 늦잠을 자기 일쑤여서 혼자서 어머니가 차려 놓은 밥상을 혼자 앉아서 먹곤 했었는데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밥 먹는 것이 참 무서웠던 적이 있었다.
거실에 연이어 있는 부엌 식탁위엔 그 때처럼 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준비된 밥상을 보자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식탁으로 다가갔다. 식탁보를 젖히자 메모 쪽지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부터 혼자서 푸욱 쉬 시구려 나는 애들하고 정동진의 해맞이도 볼 겸 친정에 다녀 오리다. 혼자 있기 싫으시면 강릉으로 오시던지.........)
아내가 남긴 쪽지를 보는 순간 뒤통수가 어질어질 해진다. 그랬다. 올해는 꼭 아내를 정동진의 해맞이 구경을 시켜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무심한 내 탓에 아내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셈이다. 울화통이 슬그머니 일어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편 잠든 사이에 애들만 데리고 정동진엘 가다니.........이런 푸대접을 받으면서 내가 여기에 쭈그리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식탁에 차려진 밥상을 버려둔 채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오늘부터 몰아친다던 한파 덕인지 겨울 찬 바람이 거세게 내 얼굴을 써늘하게 만들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내차를 몰고 나는 어느새 55번 고속도로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놈의 여편네 남편을 이 따위로 푸대접을 하다니 내 정동진에 가면 그냥 안 둘 거다.
마음 속으로 이리 다짐을 하지만 아내에게 이겨본지가 까마득한 것을 나 자신은 이미 알고 있다.
푸대접을 받아도 말못하는 사오정이 된지 벌써 몇해인가 나는 이내 체념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