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방 아저씨
선비만석
丁亥 年이 간다고 사람들은 송년회다 뭐다 맨 날 술판을 벌리고 있는데 우리 기원 단골인 만방 아저씨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지 맨 날 기원 구석자리에서 바둑 지를 들고 기보를 놓아보거나 어쩌다가 하수 하나 걸리면 방내기를 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일과이다.
만방아저씨가 그렇다고 직업이 없어서 우리 기원엘 진을 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중개사가 그의 직업이다. 어쩌다 큰 건 하나 중개 하는 날이면 그는 전화통에 불이 나도록 바쁘게 움직인다. 요즘은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어서 그렇지 전에 부동산 경기 좋을 때는 기원에야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출입을 하였지 요즘처럼 아침부터 기원엘 나오지는 않았다.
오늘도 만방 아저씨는 내가 기원문을 열자마자 들어오시더니 예의 창가의 구석진 자리를 차고 앉아 바둑지의 기보를 놓아보며 혼자서 중얼거린다.
“흐음........한 상훈 초단이 결승에.......”
“아니 초단이 결승에 올라가면 9단은 뭐하는 사람들이여........”
아마도 한 상훈 초단이 LG배 결승에 오른 기보를 놓아보고 있나보다. 나는 그런 만방 아저씨가 좀 가엽게 느껴진다. 남들은 송년회를 몇 번씩이나 하는데 만방 아저씨는 이제 12월이 다가도록 송년회 간다거나 모인다는 이야기가 없으니 주변에 친구들이 없는지 아니면 본인이 싫어하는지 알 수가 없다.
“김 양아 커피 한잔 주면 안 되겠니?!”
만방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기원의 바둑판과 바둑돌을 정리 하느라 커피를 한잔 드리지 않았더니 그새 목이 타는 모양인지 커피를 타 달랜다.
“알았어요. 설탕 많이 넣어요?”
“그럼, 물론이지......”
만방 아저씨는 커피에 크림은 넣지 않으나 설탕은 네 스푼이나 넣어서 마신다. 당뇨가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저씨는 왜 송년회 안 해요?”
나는 며칠 전부터 그것이 궁금해서 결국 물어보았다.
“허허....송년회 그거 술 먹구 노래방 가구 미친 듯 떠드는 거 아닌감. 난 그런 바보 같은 짓이 싫어서 안가......”
“에이 거짓말.......아저씨 친구들이 왕 따 놓나 보네요......”
“왕 따라.......허긴 그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안가니 부르는 사람도 없지.......”
만방 아저씨의 대답은 웬일인지 서글프게 들렸다. 남에게 왕 따를 당한다는 것이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다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지 아는 사람들은 어떤 조직이던 조직에 속하고 싶은 법이다. 그런데 만방 아저씨는 어디에든 속한 일이 없나보다. 가족하고 송년회라도 하실 일이지 참 안타깝다.
오늘도 기원은 오후 늦어서야 손님이 들어올 텐데 그동안 만방아저씨와 내가 둘이서 무료히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니 나도 답답해진다. 난 만방 아저씨에게 커피를 한 잔 찐하게 타드리고 카운터에 돌아와서 남친 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때였다. 만방아저씨의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여보세요.......어.......웬일인가? 송년회를 하자고? 처남이 그럴 시간이 있는가? 아 나야 시간이 많지만.......알았어...이따 저녁에 봄세....”
아마도 처남과 저녁에 송년회 약속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왕 따를 당한다고 하여도 가족도 왕 따를 하지는 않겠지. 나는 만방 아저씨가 송년회를 한다는 것이 마치 내일처럼 기뻤다.
“아저씨, 송년회 약속 하셨나 봐요?”
“으응......처남이 가족끼리 모이자고 하네........”
“좋으시겠네요.......”
“좋기는.......가봐야 술 먹고 노래방 가고....머 그렇고 그런 귀찮은 일이지......”
만방 아저씨는 그저 그런 심드렁한 대답으로 나를 기운 빠지게 하였다. 만방 아저씨는 바둑을 두면 만방으로 지거나 이기거나 하는 일이 많아서 만방이라고 별명이 붙여졌지만 사람이 워낙 순해서 기원에서 만방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가끔은 뜨내기손님이 만방아저씨에게 걸려들어서 만방으로 바둑을 지고 나면 만방 아저씨의 얼굴엔 화색이 돌고 너털웃음으로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하면서 복기까지 친절하게 해준다. 모르는 사람들은 만방 아저씨의 기력이 강1급으로 생각이 들 정도로 바둑을 둘 때면 생기가 돌고 착점마다 신중해 지며 어떤 때는 프로도 감탄 할 묘수를 두곤 하였다.
오늘도 만방 아저씨는 자신과 바둑을 두어줄 사람을 기다린다. 마치 떠난 연인을 기다리듯 기원문이 열릴 때 마다 시선을 문으로 두며 어떤 이가 들어오는 가 유심히 살피곤 한다. 아마도 그에게 첫 번으로 걸리는 사람은 만방으로 바둑을 지거나 아니면 운 좋게 만방으로 바둑을 이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