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히히 남자가 여자를 알면 내리막이닷....선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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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
선비만석
“삶이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공존하여 존재 한다”라고 한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고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내 삶의 모습이 내리막길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진 탓인지 모른다. 엊그제 청춘이더니 하룻밤 자고 나니 노년이로세........ 이는 삶의 생존이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그동안 남보다 더 잘.........이라는 나의 욕심 많은 명제를 완수하려고 얼마나 달렸던가.......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볼 시간조차 가지지 못하고 달린 것은 아닌가?
정상에도 오르지 못하였는데 어느새 내리막길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정상은 무엇인가? 出世인가? 아니면 富者인가? 명예인가? 형체도 없는 이러한 것들에 매여서 남에게 싫은 소리 한 일이 부지기수요 남의 가슴에 못을 박은 일은 또 얼마인가.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 할 때 왜 흙으로 빚어 생각할 줄 아는 이성을 주셨을까?
모처럼 집에 와서 아들방의 컴퓨터를 차지하고 내 삶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하다 글을 쓴다. 어제 나이트근무를 한 아내는 저녁 무렵 벌써 잠에 골아 떨어지고 (아내는 성골롬반요양원 호스피스이다) 나는 말도 몇 마디 나누지 못하고 그만 바둑을 두다가 저녁에 친구들 모임에 다녀왔다.
요즈음 내 바둑이 내리막길을 탄다. 내 인생처럼 말이다. 육단승단 하였다고 동네방네 자랑 질 한지 한 달도 못 버티고 그만 내리막길이다. 겨우 5단을 유지하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어차피 유한존재이다. 이 유한의 시간 속에서 인간들은 오로지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하지만 그 삶 중에는 바른 길로 나가는 삶도 있을 것이고 요즘의 정치판처럼 이전투구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뇌물 기업으로 명성을 드날리는 S기업처럼 온통 진흙탕 삶을 영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데 그 모든 삶이 결국은 자신의 책임 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남의 탓만 하는 사람들은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도신경에 보면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라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예수의 제자가 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 예수의 제자처럼 그리 하지는 못하더라도 가끔은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그런 삶을 살다가 아주 천천히 내리막길을 내려와서 흙에서 난 자 흙으로 돌아가리니......
내리막길을 앞에 두고서 이 밤 이런 공상을 하면서 잠을 안자는 나는 내리막길이 분명하다. 그러나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가고 싶은 것은 나의 또 다른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