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일기(4)
선비만석
소영은 김 상무에게 손을 잡힌 채로 걸으면서 마음이 불안했다. 누군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너무도 곤란할 것 같았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욱 소영의 가슴을 조였다. 외간 남자에게 손을 잡혔다는 것이 통상적인 인사 치례를 제외 하고는 처음인지라 너무도 떨렸다.
소영이 김 상무에게 잡힌 손을 빼려 하자 김 상무는 더욱 힘을 주어 잡았다. 그러고는 강변의 벤치로 가서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 상무는 얼굴이 빨개진 소영을 보며 말했다.
“왜요?! 불편하세요? 전 떨어져 걷거나 부자연스러우면 오히려 더 남의 시선을 받을까 걱정스러워서........”
“아뇨.......누가 아는 사람이 볼까봐....... ”
“아........그럴 수도 있겠네요.........그래도 잠시만 더 잡을 게요 소영 씨 손은 너무 따뜻하고 좋아요. 먼저 간 제 아내의 손도 소영 씨처럼 따뜻했는데........ ”
“네에.......?!”
“제 아내는 3년 전에 암으로 먼저 갔어요. 내가 일만 알고 아내를 돌보지 않은 탓 이죠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등진 뒤로 이렇게 따뜻한 손을 잡아보긴 처음 이예요”
“저런.......그런 일이.......전 그것도 모르고........”
“처음 소영 씨를 뵈었을 때 저는 제 아내가 살아 온줄 알았어요. 너무도 제 아내를 닮은 소영 씨를 본 순간 전 소영 씨에게 무어라도 해주고 싶었죠. 아까 식사를 할 때도 아내랑 같이 먹는 기분 이였어요. 미안해요. 저 혼자 소영 씨의 마음과는 아랑 곳 없이 행동해서.”
“아니 예요. 제가 오히려 미안합니다. 전 상무님이 제 손을 잡 길래 너무도 당황해서 그만 가슴이 내려앉는 줄 알았어요.”
“허허........ 혹시 절 치한으로 생각 하신 것은 아니죠?!”
“아뇨.......절대 그런 것은 아니 구요........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서........”
“저도 처음엔 식사를 하고 바로 일어날 생각 이였죠........ 한데 소영 씨가 산책을 하자 길래 아내 같은 여자랑 산책 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더군다나 걷다보니 손도 잡고 싶어지더군요. 불쾌 하셨다면 사과 할게요”
“김 상무님, 괜찮아요. 불쾌하긴요. 제가 계약 건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시는 바람에 좀 서운하셨겠네요?!”
“아뇨.......어찌되었든 오늘 즐거운 시간 이였어요. 덕분에 오랜만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진 걸요 사실 오늘 먼저 간 그 사람 기일이에요.”
“어머...........저런..........”
소영은 김 상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육십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나이가 들어 보이지는 않지만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이 있다고 느꼈었는데 그런 그의 얼굴이 한결 밝아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의 눈가에 물기가 어려 오는 것이 그녀의 가슴을 아리게 하였다. 소영은 김 상무에게 잡힌 손을 살며시 빼고는 그의 어깨를 감싸않았다. 김 상무는 소영의 품안에서 가느다랗게 어깨를 들먹거렸다. 남자는 가슴으로 운다더니 아마도 김 상무는 오늘 소영에게서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하며 가슴으로 우는 것 같았다.
소영이 김 상무와 헤어져 다른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차를 탄 것은 거의 오후 일곱 시 반이나 되어서였다. 다른 때 같으면 소영이 퇴근 할 시간에 맞추어 서너 번은 전화를 하였을 백수 남편은 오늘 따라 한번도 전화를 하지 않으니 오히려 기분이 이상했다. 혹시 아픈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소영은 집으로 차를 몰고 가는 길이 막히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힘든 직장 일을 견디는 유일한 위안 이였다.
“어.........당신이 먼저 전화를 다하네........ 오늘 바쁘다더니 늦는 거야?”
남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가에 눈물이 피잉 돌았다. 부부 중에 누군가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등진 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란 것을 오늘 김 상무를 보고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백수라고 알게 모르게 구박한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아니 지금 집으로 가는 길이야........당신 배고프겠다. 미안해요........”
“염려 마요........난 아직 배 안고파. 그리고 당신 빨리 와 나 당신에게 보여 줄 것 있어”
“뭔데?!” 머 어제처럼 기원에서 돈 땄다고 자랑 하려는 거지?“
“아니.........그런 거 이제 안 해 어제가 마지막 내기 바둑 이였어........”
“알았어요.....금방 갈게.....”
소영이 집에 도착 한 시간은 여덟시가 다 되어서였다. 소영이 아파트 현관의 벨을 누르자 남편이 문을 열었다. 한데 남편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마치 살림 하는 남자처럼........
집안으로 들어서자 구수 한 된장찌개 냄새가 소영의 후각을 자극했다.
“아니 이게 웬 냄새야........”
“허허........오늘 내가 당신을 위해 된장찌개를 끓였노라......”
“당신이 어쩐 일이람.......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
“이건 기본이고 .......................우선 씻고 식사를 합시다. 그 다음에 내 당신에게 보여줄 것이 있으니깐......”
“참내........당신 머 로또라도 맞았우? 궁금하게 그러지 말구 지금 말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소영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오자 남편이 봉투 하나를 내 밀었다.
“이게 뭐유? 진짜 당신 로또 맞았나......돈인거 같네....”
“어허 얼른 꺼내 보기나 해........”
소영이 봉투를 열자 하얀 A4용지 종이 하나가 곱게 접혀 있다. 종이를 펴자 인사발령장 이라는 문구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가슴에서 뜨거운 바람 같은 것이 머리끝으로 오른다.
남편의 인사 발령장이다. 소영이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그러고 서있자, 남편이 말했다
“여보, 그 동안 당신 너무 고생 많았어........먼저처럼 좋은 기업은 아니지만 유망한 중소기업에서 나를 취업시켜 주었어. 직책도 상무니까 이제 당신 힘든 보험일 안 해도 좋아. 그동안 나 때문에 당신 많이 힘들었지”
남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영은 와락 남편의 품에 안겼다. 낮에 김 상무를 안아준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였지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