晩秋
선비만석
요즈음은 밖으로만 돈다. 아침 일곱 시 사무실로 나간다. 책임감이란 참 무섭다. 여덟시 삼십분에 나가던 출근 시간이 한 시간 반이 빨라져도 적응을 한다. 황금물결이 출렁이던 논은 어느새 황량한 들판으로 변했다.
세월이 많이도 변했다. 젊은 시절 취업을 하기 전에는 이맘 때 쯤 이면 벼 베기가 한창 이였는데 낫으로 벼 베는 풍경은 지금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없다. 트랙터가 농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농기구가 된지 오래이다.
한대에 수 천 만원 하는 트랙터가 몇 만 평의 논도 금 새 벼를 베고 거기다 벼를 베면서 탈곡까지 하는 세상이니 농촌에는 젊은이들이 일을 하기위해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
이래저래 농촌은 인구가 줄기 마련이고 더군다나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젊은이는 없다. 농촌의 젊은이는 50대가 젊은이다.
전에는 추곡수매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지금은 공공비축미라는 제도로 바뀌었다. 정부가 공공의 목적으로 농민들로부터 쌀을 사는 제도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이유는 공공비축미 현장에 나가 농민들이 애써 지은 벼를 사는 일이다. 직원들이 벼를 사는 일을 하고 나는 업무추진이 제대로 되는지 차를 타고 공공비축미 매입현장을 다니면서 직원들을 격려하고 농민들과 대화하고 같이 웃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한다. 농촌마을엔 감나무에 아주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홍시가 먹고 싶어 감나무 주변을 어슬렁 거렸다. 하지만 감나무에 감을 따려고 해도 감 따는 긴 장대가 없으니 어쩌랴 그림의 떡이다. 한데 이게 웬일이람........ 담장 밑에 홍시 하나가 떨어져 있다. 누가 볼세라 얼른 주워서 먹었는데 그 맛이란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
농촌으로 다니다 보면 야트막한 야산에도 단풍이 아주 잘 들었다. 지난달 직원들과 등산을 갔었는데 사진을 찍기는 찍었는데 이놈들이 사진을 안준다. 고얀 놈들.........
예전 학교(초등학교) 다닐 때는 가을 소풍이 너무도 기다려졌는데........ 어제 밤에는 모처럼 저녁 산책을 하였다. 밤하늘의 별들이 너무도 아름답다. 청년시절 가을걷이를 하러 다닐 때는 도리깨질이란 것을 신나게 하였던 추억이 새삼스럽다.
지금은 농촌에 도리깨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농촌에 예전 농기구나 농민들의 생활상을 만들어 놓은 박물관 하나쯤 만드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단풍이 다 지기 전에 가을 산행을 한번 더했으면 싶은데 시간이 허락하지 않을듯 싶다. 주말마다 날아오는 청첩장 덕분에 지갑은 텅텅 비기 일쑤지만 가을이야 결혼 시즌이 아니던가. 나도 젊었으면 결혼을 한번 더해보았으면 하는 쓰잘데기 없는 공상을 하면서 청첩장에 적힌 날자에 꼬박 꼬박 찾아봐야 한다. 나도 결혼 안 시킨 애들이 둘이나 있으니...
거리 단풍나무 가로수의 단풍잎은 가을바람에 날려 노랑나비가 되어 나풀나풀 춤을 춘다. 이제 이 가을이 지나가면 옷깃을 여미는 겨울이 오겠지만 아직은 가을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