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日記
선비만석
아침밥이 맛있는 내음을 풍기면서 익어간다. 아침이면 늘 분주하다. 내가 생활전선에 뛰어든지 벌써 몇 해인가 사람이 산다는 것이 만만하지 않은 것은 알지만 요즘 같아서는 죽을 맛이다.
시간은 벌써 아침 여섯시 반이다. 여섯시에 일어나 허둥지둥 대면서 지지고 볶는 일이 아침의 일과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방에서 아직도 코를 골면서 처자고 있는 내 옆 지기 인지 남편인지 때문에 더 열 받는다.
한 때는 대기업 촉망받는 엘리트 사원이던 남편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겨우 부장에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자기 사업을 한다고 난리 부르스를 추더니 IMF도 아닌데 겨우 이년 만에 사업을 말아먹고 백수 신세로 전락 하였다. 남편이 백수로 지낸지도 3년이니 내가 생활전선에 뛰어든 것도 삼년인 것이다.
남편이 직장에 다니면서 돈 벌어다 줄 때는 남편이 하늘같더니 이젠 하늘이 아니라 원수 같아 보이니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 같다.
지금 애들이 대학에 둘이나 다니는데 사오정 남편은 어디 취업도 안 되지 벌어놓은 돈은 사업 한다고 다 말아 먹고 나서 하는 일이라곤 동네 기원에 나가서 바둑을 두거나 그것도 싫어지면 하루 종일 방콕 족이 되어서는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서 바둑을 두거나 야동을 보는 일이 직업이 되었다.
내가 아무리 바빠서 날 뛰어도 설거지 하나 도와주는 법이 없고 집안 청소도 손 하나 까딱 안한다. 집안에서 귀하신 몸으로 자란 티를 아직도 벗어던지지 못하고 목청만 높이니 나는 어쩌다 저런 인간과 맺어져서 이리 사는지 다 팔자소관이다.
오늘 아침에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여도 어제 밤늦게 까지 기원에서 바둑 두다 돈 몇푼 땄다고 기원에 드나드는 떨거지 동족들과 밤새도록 쐬주 파티를 벌이다 들어와서는 곤히 자는 나의 단잠을 깨우고는
“소영아!!, 내 니를 고생시켜 미안하다.”
이리 한마디 하고는 수염도 깍지 않아 송곳 같은 턱수염을 내 얼굴에다 부비면서 그래도 남자 구실을 한다고 껄떡거리더니 사람 몸만 달구어 놓고 제풀에 떨어져 여직 처자고 있다. 그래도 어쩌랴.......어제 모처럼 내 가슴을 울컥 울려 놓고 오랜만에 흥분을 느끼게 했으니 해장국이라도 끓여주고 나가야지
해장국은 뭐니 뭐니 해도 북어를 뜯어 넣고 콩나물과 함께 푸욱 끓여서 얼큰하게 태양초 고춧가루를 넣어 먹게 하면 최고다.
사업을 실패하고는 부쩍 고향인 강원도로 내려가자고 하지만 지금 내려가면 대학 다니는 애들은 어쩌란 말인가. 애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나가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될 일인데 서울이 싫다면서 자꾸만 졸라대어도 난 눈도 하나 꿈쩍 안한다.
나는 보험 회사에 다닌다. 내 타고난 미모 덕분으로 고객에게 인기 있는 몸이다. 그런데다 애교가 철철 넘치는 나의 끼 때문인지 모르지만 계약고가 오르면서 보험 왕으로 선발되어 잘 나가는 보험 설계사가 된게 작년의 일이다.
오늘도 몇 사람의 신규 고객을 만날 예정이고 또 VIP 고객인 모 대기업의 상무를 미팅할 예정이다. 점심시간에 상무를 미팅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으니 옷차림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화장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해장국이 끓어오른다. 식탁위에 반찬을 준비하고 일어나서 아침을 먹도록 해놓고 나니 벌써 시간은 일곱 시 반이다. 아침 미팅이 여덟 시 반이니 서둘러야 되겠다.
화장을 하고 세련된 정장으로 갈아입고 나서 흰색 그랜저를 몰고 집을 나선다. 이 그랜저는 작년에 받은 보험왕의 상금에다 그동안 모아 두었던 내 비밀 통장의 돈을 조금 보태서 구입한 것이다. 그전 까지는 남편이 몰던 소나타를 몰고 다녔으나 나의 이미지 관리를 위하여 돈을 투자한 것이다.
시내를 들어서니 차들이 꼬리를 물고 끝이 없다. 서울의 이 교통난이 나는 정말 답답하지만 어쩌랴. 다들 편하자고 차를 몰고 다니는데 오히려 그게 더 불편한 것을 모른다. 전에는 전철을 타고 다니는 편하기만 하였는데.....
김 상무를 만나서 오늘은 그 회사의 직원들 전부가 들게 되는 종합 보험을 성사시킬 것이다. 김 상무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알지만 매너 있는 사람이고 더군다나 개인보험도 큰 것을 세건 이나 들어 주었으니 그가 점심시간에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 할 수 없다.
차가 겨우 회사의 차고에 도착하니 벌써 여덟시 이십분......엘레베이타에 올라타고 사무실 층수인 8층을 눌렀다.
백수인 그 인간은 일어나 아침이나 먹었을까? 그래도 이십 이년을 살대고 살아온 인간이니 불쌍히 생각해야지 뭐.
이따 저녁에 퇴근 하면 어제 제데로 못 치른 고 짜릿함을 맥주한잔 먹이고 치루리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