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주도 한라산을 찍었는데.....한라산은 어디로 갔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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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 잡혔다(2)
선비만석
민석이 바둑을 배운 뒤로 수많은 대국을 하였지만 여자하고 두는 바둑은 난생 처음이다. 여자라고 얕보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기사들 중에 여성 기사들이 많지만 민석은 그들의 실력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남자기사에게는 좀 딸린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민석이 루이라는 중국인 여성 기사가 이 창호를 이겼을 때 참 대단한 여자구나 하고 생각은 하였으나 국내 여류들이 루이에게 늘 지는 바람에 자신도 여류 프로와는 호선으로 두어도 될 거라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의 대국상대야 더군다나 아마추어 아닌가. 자신이야 한 때 프로가 되어볼까 하는 꿈도 가졌던 강 1급에, 더군다나 아마대회에서 입상한 경력도 있는 강자가 아닌가. 한데 일면식도 없는 여성과 바둑을 두리 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다. 실력이야 두어보면 알 일이지만 아무리 잘 둔다고 하여도 자신과 대적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판 승부로 할까요? 아니면 삼판이승으로 할까요?”
“단판은 지는 사람이 서운 할 테니 삼판이승으로 하는 것이 좋겠어요.”
여자가 생글생글 웃으며 민석의 말을 받자 민석은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자신을 보고 웃는 여자가 처음은 아니지만 뭔가 모를 흡인력으로 자신을 끌어당기는 듯한 이 묘한 분위기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치수는 어떻게 할까요?!”
“호선으로 하는 것이 좋겠네요........ 삼촌이 그러시는데 아주 강 1급이라고 하시던데”
(흐음.......이 여자가 사전에 그런 정보를 알고서도 호선으로 하자고.....!!)
(도대체 이 여자의 정체가 무어란 말인가? 설마 프로는 아니겠지.......여자 프로 기사들은 다는 모르지만 그래도 몇 명은 바둑잡지를 보고 얼굴은 아는데.... )
민석은 마음이 묘하게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여하튼 호선으로 두자면 강자는 틀림없는데....그렇다고 상대방의 실력도 모르면서 접으라고 할 수도 없으니 어쩔 수없이 그러자고 합의를 보았다.
민석이 백돌을 한웅큼 잡고 반상위에 손을 얹어놓자 여자는 백옥 같은 섬섬옥수를 들어 반상위에 흑돌 하나를 살며시 놓았다. 돌을 헤아려 보니 열셋이다. 여자가 흑번이 되었다.
서로가 상대방에게 머리를 숙여 목례를 나누고 바둑은 시작되었다. 백옥 같은 섬섬옥수가 반상을 오가더니 흑돌 한점이 좌상 귀 화점에 꽃잎 떨어지듯 내려앉는다. 민석은 잠시 심호흡을 하였다. 이겨도 본전이요, 지면 망신인 이 대국이 그에게 심적인 압박감을 주었다. 민석은 백돌 하나를 집어 들고 망설임 없이 우하 귀 화점에 힘차게 착 점을 한다. 바둑판을 울리는 경쾌한 마찰음이 두 사람의 귀를 맴돌다 허공을 가른다.
포석은 서로가 양화점으로 시작 하였고 여자는 발 빠르게 선수를 행사하며 실리를 착실히 지키고 그러다 보니 민석은 어쩔 수 없이 세력바둑으로 자신의 바둑을 두게 되었다.
바둑이 중반전으로 넘어갔지만 좀처럼 선수를 잡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실리를 확보한 여자는 얄미우리만치 야금야금 민석의 세력을 지우면서 자신의 실리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 이건 아마추어의 솜씨라고 볼 수 없는 그런 바둑이였다.
민석의 가슴은 답답하다 못해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힘 한번 못써보고 그냥 밀리는 바둑으로 종반전을 마지 할 수는 없는 일이였다. 민석은 최선을 다해서 세력을 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제한시간은 각자 삼십분에 초읽기 30초 세 번이나 어느새 시간은 흘러 가버리고 민석은 초읽기에 몰리고 있었다.
아무리 계가를 하여 보아도 반면 열 한집의 승부였다. 덤을 받아도 네 집 반의 패배를 뒤집을 곳은 없었다. 여자가 입가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민석의 얼굴을 흘긋 보는 모습을 민석은 알 수 없었다. 반상을 구석구석 훑어보아도 민석의 패배는 이미 기정 사실 이였다.
“허허......김과장 오늘 땀깨나 흘리겠는 걸......”
언제 대국을 보러 왔는지 원장이 한마디 던진 말이 민석의 귓가를 장송곡처럼 울렸다.
민석은 조용히 돌을 거두었다. 패배를 인정하기 싫었지만 진 것을 뒤집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너무 긴장 하셨나 보네요........... ”
여전히 입가에 묘한 웃음을 지으며 여자가 위로인지 비아냥거림 인지 민석 에게 말을 건넸다. 민석의 속은 터지는 화산처럼 끓어오른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진 것도 모른 채 민석은 흑 돌을 집어 들고 우하 귀 소목에 착 점을 하였다. 이번은 자신이 반드시 이기리라 다짐을 하면서 아까와는 반대로 자신이 실리 작전으로 나가리라 마음을 다졌다.
“김 과장........내기바둑이니까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네........”
민석의 속을 긁으려는지 원장은 빙글빙글 웃으면 민석 에게 다짐을 받는다.
“바둑 두는데 방해하지 마시고 저리로 가셔요..........”
민석은 원장에게 퉁명스레 대답하고는 반상위에 흑 돌과 백돌이 어우러져 춤을 추는 것에 이미 정신을 몽땅 뺏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