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에 초연하여 두는 바둑이야 신선놀음이지만 생계가 달린 프로기사야 승부에 초연할 수 없다. 이겨야 사는 것이다. 초야의 승부사도 예외는 아니다. 네 번째 판인 이 판을 이겨야 동률이 되고 다음 승부에도 영향이 있는 중요한 판인데 지는 바둑을 뒤집기란 너무도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판이 끝내기로 돌입한 이런 판에서 승부를 뒤집는 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김씨의 눈에 승부의 길이 보였다. 어쩌면 두 사람 다 너무 승부에 열중하다보니 대마의 생사에 대해 잊어 버렸는지 모른다. 오궁도화요, 매화육궁처럼 눈에 금방 보이는 사활이 아니라 현현기경에나 나올법한 그런 사활의 맥이 김씨의 눈에 포착된 것이다. 김씨의 온몸에서 전율이 일기 시작한다. 수많은 승부 속에서 살아온 그였지만 다 진 바둑을 던지지 못하고 기다림 끝에 무언가를 발견한 그 순간의 희열은 미지의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기분이 이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김씨의 백돌이 젊은이의 대마를 향해 떨어지자 젊은이는 그 백돌을 보고 마치 얼어붙은 동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젊은이의 장고가 시작된다. 삼십분이 남은 시간을 다 쓰고도 그의 장고는 끝나지 않았다.
현현기경에 나오는 일부당관세(一夫當關)와 같은 묘수가 터진 것이다. 젊은이는 초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조용히 돌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박 사장의 얼굴에서 화색이 돈다. 김씨는 일순간 온 전신의 맥이 빠져버린 느낌이다.
“아니.........저 친구가 왜 던진 거야?!”
허무한 결말에 한 사장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 한마디 내뱉었다.
“이 사람아 우리 같은 하수가 뭘 안다고 끼어드나”
박 사장은 어쨌든 2:2의 동률이고 또한 백번을 잡은 김씨가 이겼으니 앞으로도 계속 이길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한 사장의 말을 받아친다.
그 다음날 그 젊은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봐, 한 사장 그 사람 겁먹고 도망가거나 포기한 것 아닌가?!”
박 사장이 한 사장에게 보챈다.
“그러게......... 그럴 사람은 아닌데........어째 연락이 안 되네. 뭐 급한 사정이 있나보지 내일은 올 테니까 기다려 주게.”
한번도 연락이 안 되는 젊은이에게 조금은 화가 난듯해 보였다.
“아 우리 김 사범님이 조금 봐 주었다가 혼내니 겁이 난 게야. 초야의 숨은 고수를 알아본 것이지 그렇지 않고야 안 나타날 이유가 없지”
박 사장은 한 사장을 약이라도 올리려는듯 그리 말했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그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나머지 세 판은 기권으로 처리되고 한 사장은 고스란히 삼천만원의 거금을 내 놓았다. 김씨는 이천만원의 상금을 받아 쥐었으나 마음이 불편했다.
바둑을 접하고 두어 온지 40여년 프로기사의 꿈을 접고 야인으로 숨은 고수로 명성을 떨치기는 하였지만 내기바둑꾼으로 소문난 그에게 점차 기계의 사람들은 하나 둘 그를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내기바둑은 어쩌면 야인으로 생활 하는 그에게는 삶의 희열과 바둑을 두는 또 다른 이유인지도 모른다.
김씨가 두점 머리 기원의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원장에게 다녀온다던 뒤로 꼬옥 보름이 지난 어제 토요일 이였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렇게 평소처럼 같은 모습으로 들어선 김씨를 반겨 맞은 것은 원장 이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