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루이 국수님에게 지도기를 받던 한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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勝負士(2)
선비만석
오후부터 시작한 바둑은 어느새 밤이 이슥해 졌지만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미세함으로 이어져 가고 있었다. 초반부터 장고를 거듭하는 상대방에게 김씨는 질렸지만 초조해 하지는 않았다. 상대방이 수를 생각하는 동안 자신도 수를 생각하는 시간이므로 기다림에 익숙해 지기로 작정했다. 승부란 기다림 끝에 이길 수 있는 판이 조급함으로 망치는 판보다 많다는 것을 오랜 동안의 야인 생활로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터이므로.
김씨를 상대하는 사람은 김씨가 처음 보는 이십대 초반은 됨직한 젊은이였다. 아마도 연구생 출신이려니 하고 짐작은 하였지만 상대방의 바둑이 만만한 실력이 아님을 파악한 김씨는 대리 전을 치르는 숨 막히는 이 순간이 너무도 힘들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수많은 고수들을 상대해 보았지만 이번만은 김씨의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김씨가 서울로 불려간 이유는 이랬다. 서울에서 제일물산을 하는 박 사장은 예전부터 김씨와 막연한 사이였고, 가끔 김씨를 불러 다섯 점을 접고 지도기를 두는 사람으로 자신과 막상막하의 바둑실력을 가진 일신물산의 한 사장과 틈만 나면 바둑으로 승부를 가리는 그런 사이였다. 하지만 그들의 승부는 좀처럼 누가 우위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용호상박의 기세가 충돌하니 어떻게든 상대방의 기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던 박 사장이 김씨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 대국이 성사된 이유였다.
“이봐 한 사장, 내가 시간이 없어 그렇지 내가 아는 숨은 고수에게 지도를 받으면 자넬 두 점을 접게 만들 수 있는데.......”
“허허....... 이 친구가 큰소리는, 나도 내가 아는 사범에게 지도 받으면 자넬 두 점 접게 만들 수 있네 ”
“거참.......내가 아는 사람은 프로와 대국해도 절대로 밀리지 않는 고수라니까........”
“누군 그런 사람이 없나.......그건 나도 마찬가지여.......”
이렇게 입씨름을 하던 두 사람이 돌연 박 사장이 불쑥 내뱉은 한마디에 의기투합 되었다.
“그럼 우리 그 두 사람을 맞붙여 볼까?”
“좋지........하지만 그 사람들 그냥은 안 붙을 테니 상금을 거는 것이 어떤가?!”
한 사장은 그렇게 박 사장의 제안에 맞장구를 쳤다. 손바닥이 마주치면 소리가 나듯이 그들의 맞장구에 김씨와 상대방 젊은이의 대국이 이루어지고 대군 조건은 보름간 일곱 판을 두되 한판 승부에 쌍방간에 천만 원씩 걸어서 이천만원 상금이 걸린 대국이 벌어진 것이다. 승리한 팀에서 패배한 사람의 금액 일천만원을 가지되 대국자에게는 절반을 준다는 조건이다. 이런 제안을 받은 김씨는 상대방이 누군지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대국 승낙을 해버린 것이다.
일주일간 세 번의 대국에서 김씨는 처음 대국을 이겨 오백만원을 챙겼으나 다음 두 판을 내리 졌다. 젊은 친구의 바둑은 상대방의 작전에 따라 변화가 무쌍하며, 자신의 특별한 취향이 없는 스타일로 김씨가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껄끄러운 바둑이였다.
세 번의 대국에서, 첫 판은 흑번을 잡은 김씨가 자신의 스타일을 살려 전투를 하도록 유도하여, 젊은이의 대마를 잡고 207수만에 불계승을 거두었으나, 첫판을 진 젊은 친구는, 두 번째 판부터는 전투를 유도하는 김씨의 수를 피하며, 변신과 타개를 능란하게 구사하여 김씨에게 두 판을 이긴 것이니, 끝내기에 능하고 신산 이 창호를 닮은 바둑이라고 하면 딱 맞는 그런 바둑이였다.
김씨가 두 판을 연거푸 내어주자 박 사장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박 사장이 아는 김씨는 전국에서 숨은 고수로 이미 명성이 자자한 사람인데 새파란 젊은이에게 갈수록 밀리자 돈도 돈이지만 같은 업종을 하는 경쟁자요. 바둑도 앙숙인 한 사장에게 지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답답해진다.
김씨의 손바닥에 땀이 배이기 시작했다. 김씨의 백번인데 종반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제한시간은 이미 다 써버렸고 야속하게 돌아가는 초시계의 바늘 소리가 김씨의 가슴을 조여 온다.
반면을 들여다보며 계가를 아무리 해보아도 반면 열 집은 흑이 유리해 보인다. 더군다나 흑이 선수이다. 덤이 여섯 집 반이지만 덤을 제하고도 세집 반은 불리하다. 세집 반이면 바둑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선수를 잡은 흑번인 젊은이가 큰 끝내기는 이미 결정지어 버렸고, 잔 끝내기도 치밀하게 할 것이니 역전은 어렵게 느껴진다. 연이어 세 판을 지게 된다면 이게 무슨 망신인가. 목 줄기를 등으로 타고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던질까..............]
김씨의 마음에 갈등이 일기 시작한다. 젊은이를 흘끗 쳐다보니 계가중인지 바둑판을 보는 눈동자가 연신 이리저리 움직인다. 아직 삼십분도 더 남은 젊은이의 초시계는 여유 있어 보인다. 승리를 확신 한 듯 여유 있어 보이는 젊은이의 표정이 얄밉다. 젊은이가 승리를 확신한 표정으로 흑 돌을 집어 들고 힘차게 착 점을 한다.
다시 김씨의 초시계가 움직인다. 김씨의 눈에 보이는 바둑판에 젊은이의 대마 하나가 불현듯 김씨의 공격에 쓰러지는 것이 보인다. 김씨는 묘수의 수순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