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금강산 자락의 소나무는 몇년이나 살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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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질 할 때 땡겨라
선비만석
“아니 여직 주무세요?!”
꿈속에서 세탁소 최씨의 대마를 몰고 있는 신나는 대목에서 누군가가 그를 흔들었다. 눈을 뜨자 아내가 눈앞에서 웃고 있다.
“이 사람이 한참 대마잡고 있었는데.....!!”
“어휴.......주무시면서도 바둑을 두세요?!”
“에이, 최씨를 만방에 보내는 건데.......”
비록 꿈속이지만 숙적 최씨를 만방으로 이길 절호의 찬스를 날려 버리게 만든 아내가 괜 시리 얄미워 혀를 끌끌 차면서 부스스 일어났다.
“얼른 세수하고 아침 드세요”
아내가 안방을 나가자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아홉시가 다 되는 시간이다. 다니던 직장을 정년퇴직 한 후로 그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점차 늦어졌다. 처음 몇 달은 재직하던 때의 습관 때문인지 일곱 시엔 반드시 일어나곤 하였지만 점차로 늦게 일어나게 된 것은 순전히 숙적 최씨와의 바둑 때문 이였다.
직장에 다닐 때는 휴일에나 만나던 최씨를 퇴직 후엔 거의 매일 같이 만나서 열판씩 두기로 무언의 합의를 한 탓이라 저녁식사 후에 만나서 열판을 두다보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속기인 그 와는 다르게 최씨는 장고 파에 속했다.
거기다가 최씨가 자신을 이기기 위하여 낮에도 바둑책을 열심히 보면서 정석 공부를 하고, 요즘은 끝내기에 대한 공부를 하더니 두 점 접바둑에서 정선으로도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해서, 그도 역시 낮에는 유창혁 프로의 공격 바둑에 대한 연구를 한답시고 유창혁의 바둑을 복기하는 시간이 많아 졌으나, 나이 탓인지 동네입구 두점머리 기원의 3급인 그의 바둑이 더 이상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요즘 들어 승률이 절반정도이니 최씨보다는 오히려 그가 더욱 등이 달아 기원 출입이 하루의 일과가 되어 버렸다.
“에이 여엉 밥맛이 없네........”
그는 한공기의 밥을 절반도 못비우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당신 그러다가 건강 해쳐요........바둑도 좋지만 가끔 등산도 하면 어때요?!”
수저를 내려놓는 그를 보며 아내는 걱정스레 말했다.
“힘들게 등산은 왜 하나?! 그럴 시간 있으면 바둑한판 더 두지.......”
식사를 마친 그는 대충 세수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핸드폰을 드려다 보니 오늘이 토요일이다. 직장을 그만 둔 뒤로는 요일에 대한 관심도 그의 머리에서 사라졌다.
다만 주말에는 두점머리 기원에 자리를 잡고 있다보면 대어를 낚아 올릴 기회가 오는 것이다. 기원에 터줏대감으로 드나드는 친구들을 빼고, 어쩌다가 오는 뜨내기 손님 중에 입질하다 걸려드는 대어를 잡으면, 한주의 기료나 자장면 값은 걱정이 없게 되니, 그런 대어가 오늘은 낚일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자연스레 기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 과장님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두점머리 기원의 원장은, 퇴직 후 거의 매일같이 기원 출입을 하는 그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시청의 과장으로 퇴직한 그를, 늘 하던 대로 박 과장이라 불러주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시청 과장으로 재직하던 때는 한달에 한번씩 시청 기우회를 소집하여 월례대회를 하는 등, 유난히도 바둑을 좋아하는 그의 신세를 알게 모르게 져왔던 원장이라, 기원에서는 그가 브이아이피 고객임에 두말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원장은 그에게 얼른 시원한 냉커피 한잔을 대령한다. 가을로 접어든 날씨지만 아직은 더위가 완전히 물러간 것 같지는 않은 탓으로, 시원한 냉커피 한잔을 마신 그는 기원 서가에서 묵은 바둑잡지를 한권 빼내 뒤적인다.
입질은 오후라야 시작될 것이기에 느긋하니 기다려야 한다. 자신의 바둑이 너무 속기라서 실수가 많다는 것을 알지만 고치려고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요즘은 최씨가 실력이 부쩍 늘어 그도 손이 나가기 전에 우선 수읽기를 하려고 하지만, 습관이 되어버린 그의 스타일이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 늘 끝내기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도 끝내기가 가장 어려울 것일 텐데 마지막 끝내기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삶을 마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엉뚱한 상념에 젖어 든다.
기원 안은 조용하다. 원장은 텔레비전을 보는지 기척도 없다. 의자에 앉은 채 그는 자꾸만 감기는 눈을 떠보려 한다.
갑자기 그의 낚시 대에 달린 찌가 수면 속으로 쑤욱 들어간다. 입질이 왔다. 이제 재빠른 솜씨로 낚시 대를 뒤로 채면 된다. 월척이 왔는지 손에 전해지는 느낌은 엄청난 전율이다. 이놈의 월척이 힘이 빠질 때 까지 낚시 대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기 싸움을 벌려야 한다.
「저놈이 힘이 세면 낚시 줄은 끊어지고 손에 잡은 월척은 물속으로 그냥 도주 하겠지.」
손에 힘을 가할수록 놈도 얼마나 버티는지 낚시 줄이 곧 끊어질 것처럼 팽팽해진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있는 힘을 다해 월척을 당겨본다.
그가 힘을 가하자 “탱” 하는 소리와 함께 낚시 줄이 끊어졌다. 그는 그만 뒤로 벌렁 넘어졌다.
“아이구 어디 다치신데 없어요?!”
원장의 목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눈을 떴다. 뒷머리가 망치로 맞은 듯 띵하다. 기원의 천장이 보인다. 담배 연기에 절어버린 천장의 색깔은 누런색이 도배되어 있다.
졸다가 뒤로 넘어진 것이다.
그때였다.
“아이구 일찍도 나오셨네요?!”
세탁소 최씨가 기원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누었다가 일어나는 그를 보면서 한마디 던졌다. 기다리던 월척은 안 오고 호수의 무법자 "베스" 같은 최씨가 싱글싱글 거리며 기원문을 들어서자 그는 오싹 한기가 느껴졌다.
“과장님, 요새 입질이 뜸한가 보지요?!”
“그러게........!!”
최씨의 너스레에 그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입질 올 때 바짝 땡기셔요. 히히 ..난 어제 과장님 가신 뒤에 월척 잡았죠”
“월척이라니.......?!”
“최씨가 어제 밤늦게 취기 오른 하수하나 잡아서 배추 잎 몇장 건졌다고 저러네요 그러다 이제 임자 만나 큰코다치지....!!”
원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서 싱글벙글 이구만.......”
“한수 하실래요?!”
“물론이지.......”
그는 최씨와 마주앉았다. 오늘 첫 입질은 최씨가 될 모양이다. 최씨를 이겨야 오늘의 월척이 걸려들 듯 싶은 생각이 들었다.
향소목으로 포석을 펼쳐 나가는 그의 손이 손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월척이 입질하기를 기다리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