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手의 日記
선비만석
내 취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둑이다.
요즘은 참 좋은 세상이다. 예전에야 바둑친구가 있거나 기원에나 가야 바둑을 두었지만 그놈의 컴퓨터 인지 뭔지 나온 뒤로는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바둑을 둘 수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기원 가봐야 담배연기 맡으며 찌들대로 찌든 쭈글탱이 영감들이 다반사이고 아니면 전문 내기꾼들이 먹이 감을 찾아 득시글거리니 나같이 기도(?)연마와 정신수양을 위해 바둑을 두는 선비에게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기원보다는 지금이 오히려 백배 낮다.
더군다나 운 좋으면 여성들과 한판 두면서 얼굴도 모르면서 대화는 되는 또 다른 짜릿한 재미가 쏠쏠한 매력인 것이 내가 컴퓨터 바둑을 두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컴퓨터에서 하는 게임용 바둑을 운영하는 곳은 부지기수로 많다.
우선 한국기원에서 하는 오로바둑, 라이브 바둑, 타이젬. 다음, 넷마블, 한게임 등등 여려곳을 섭렵하면서 바둑을 두다 그래도 예전 처음 시작한 곳이 오로라서 그런지 오로로 돌아왔다.
휴일이면 우선 컴퓨터 바둑 한판 두는 게 나의 일상사다.
이렇게 바둑에 매달리는 나를 마누라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나를 포기하고 자신의 취미를 살려 인라인 타기, 산악자전거타기, 등산, 스포츠댄스 등 저하고 싶은 거 하느라고 나는 안중에도 없어진 지가 오래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내 취미에만 몰두하여 부부간에 대화는 “밥 먹자” “자자” 요 두 마디면 다 해결된다. 그래도 다 제하고 싶은 거 하고 사니까 불만은 없다.
오늘도 마누라는 아침 새벽부터 등산모임에서 지리산인가 어딘가를 간다고 남의 단잠을 깨우고 부산을 떨더니 가버리고 나는 그 바람에 잠이 깨어 새벽 네 시에 아침운동이라도 한답시고 운동복 차림으로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걷다가 달리다가 휘돌아 치다 돌아오니 동이 훤히 트는 새벽 다섯 시 반이다.
거실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켠다. 오로에 접속하니 다들 잠도 안 자는지 접속인원이 3006명이라고 숫자가 뜬다. 육단에서 취권으로 바둑 두다 오단으로 떨어진지가 한달이 넘는데도 승단은 고사하고 사단 떨어져서 체면 구길까봐 조바심이다.
만만한 오단 하나 걸리기를 바라면서 자동대국을 누른다. 한사람이 들어오는데 이키 점수를 보니 30990점이다. 내가 지면 기분 좋게 승단할게 분명하다. 제기랄 이럴 때는 꼬랑지 내리고 도망 가는게 상책이다. 얼른 방나가기를 누른다.
또다시 자동대국을 누른다.
[지발 30090점 미만이 걸리게 하소서]
30084점 짜리가 들어왔다. 내 점수는 30345점이다 두어 판 져도 강단은 안 당한다. 10분에 20초 1번 대국신청을 한다. 상대가 대국 조건을 받아들인다. 홀수를 눌렀다. 내가 흑번이다. 한데 요즘 들어 흑번으로 자꾸 져서 마음에 걸린다.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말 버튼을 누른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그리고는 좌하 귀 화점에 착점 한다. 상대방도 화점 숨 돌릴 틈도 없이 연신 딱딱 하는 효과음 소리와 바둑돌이 컴퓨터 화면을 수놓는다.
정신없이 두다보니 어느새 종반전인데...형세분석을 눌러보니 내가 몇 집 지고 있다. 젠장 마음이 다급해 진다. 초 읽는 소리가 들린다. 하나, 둘, 셋,.........
중요한 순간에 상대방이 패를 걸었다. 아이고 생각할 시간도 없다. 20초 1회의 시간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생각을 하다보니 시간 패....
어이없이 아침 새벽부터 한판 깨진다.
젠장 오늘 일진이 여엉 불안하다.
다시 한판 시작한다. 이번에는 백번이다.
바둑을 잘 두어서 승리가 목전에 있다. 헌데 이놈이 바둑을 안 던지고 열까지 세어졌는데도 이상하게 바둑돌이 놓인다. 아니 아까는 분명 열하고 시간패가 떴는데 이게 웬일이람......
계가신청을 눌렀다. 상대편이 거부한다.
[에이 치사한 자식...]
약이 올라 씩씩대는데도 이놈의 초시계는 하나. 둘, 또 시간 패다. 이럴 때는 정말 컴퓨터를 확 부셔 버리고 싶다.
“야, 이치사한 자식아. 네놈을 신고 할꺼다...”
한데 이놈은 두판 이기고 잽싸게 나가 버렸다. 놈의 아이디를 잊어 버렸다. 복기를 하면 놈의 아이디를 알 수 있다.
신고할까? 말까? 순간 망서려 진다. 이럴 땐 우짜면 좋노.
에이 새벽부터 김이 푹 샜다. 오늘 아침 따라 일찍 나가버린 마누라 때문에 침실의 침대는 허전하기만 하다.
[잠이나 자자]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허전한 침대에 길게 누웠다. 천장에서 좀 전에 둔 바둑판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자꾸만 백돌과 흑 돌이 소 싸움판의 황소처럼 머리를 맞대고 식씩 거린다. 눈이 몹시 아프다. 잠을 자야한다. 눈을 감았다. 머릿속은 온통 바둑돌들이 뒤엉켜 있다.
눈이 스르르 감겨온다. 새벽부터 이기 무슨 일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