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부터 용석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였다. 그동안 선배가 두는 방식을 유심히 보았던 터라 가급적이면 선배가 응수하던 것을 따라서 두었다. 용석이 신중을 기하여 두자 고수인 선배도 이십여수가 진행되자 조금은 당황하는듯 보였다.
철옹성 같이 말뚝작전으로 일관하는 용석의 집짓기 작전은 선배가 침입하면 지키기로 일관하는 용석의 작전이 중반전으로 가면서 먹혀드는 것 같았다.
선배도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아마도 계가를 하는듯 보였다.
"아계시가 (사석=죽은돌) 누가 많은거여..."
선배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느정도 게가가 끝났는지 선배가 숨을고르더니 드디어 바둑돌을 집어들었다. 용석이 보기에는 둘 곳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끝내기라는 고수들의 마지막 비장의 무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용석은 모른다.
선수끝내기 몇방이면 이십여집은 왓다 같다 한다는 것을.... 용석도 선배의 눈치를 살피면서 아까부터 계산을 대충 해보았는데 이십여집은 이긴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바둑은 선배가 둘 차례인것을....젖혀있기부터 시작한 선배의 손놀림은 바람을 타고 있다.
용석이 지킨다고 지켜놓은 네귀부터 선배의 젖혀잊기가 시작되었다. 네귀를 여기저기 젖혀잊고나서는 변으로 손길이 바뀐다. 바둑판 위에 놓여지는 선배의 손에서는 칼바람이 인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전쟁터는 아니지만...전쟁이 끝나는 무렵이므로 피아간의 경계선을 확보하기 위한 공격이 더욱 거세진다.
공배까지 다두어놓고..계가를 해보니 결과는 용석의 두집 패배.....
"어이고 질뻔했네.....!!!"
선배가 깊은 한숨을 쉬는 것처럼 휴우~~~하면서 억지로 이겼다는 투로 말하였다...하지만 그것은 고수의 수법인 것을....어리버리 촌놈인 용석이 알리없다.
" 난 내가 이긴줄 알았는데......!!"
용석은 혹시나 선배가 흑바둑돌 몇알을 감추어 두었다 내놓은 것 같아 보여서 가슴이 쿵덕거리면서 얼굴이 붉어진다. 분명 이십여집 앞섰는데....
선배의 손이 날렵하게 몇번 움직이더니 승부는 뒤집어졌다.
끝내기......선수 끝내기.....그것에 당한 것을 몇년이 지나서 용석은 실력이 5급정도나 되어서야 그때 깨닳았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버렸다. 버스 떠난 뒤에 손들면 뭐하는가.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다. 젊고 능력있을 때 돈도벌고 이쁜 아가씨와 데이트도 하는게 아니던가...
선배에게 봄 내내 라면을 끓여 바치고서야 용석은 선배에게 두점 치수가 되었다. 하지만 내기 바둑을 두면서 이미 수업료는 많이 바친 셈이였다.
세월이 흘러 1971년 봄 용석은 군대갈 나이가 되어 신체검사를 받으러 삼척으로 가게되었다.
우물안 개구리 처럼 시골에서 이십여년을 보낸 용석은 지금은 동해시가 되어버린 묵호읍 작은댁에서 며칠 묵게 되었다.
시내 구경을 하던 용석에게 [한국기원 묵호지원] 이라는 간판이 눈에 띠었다.
[아!!! 기원이다...]
용석은 마치 에쁜 아가씨를 마주할 때 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자의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해보는 기원.......
거기엔 고수들이 즐비하다는 선배의 말을 잊지않고 있던 용석은 자신의 바둑 실력을 테스트 해보고 싶어졌다. 이층에 있는 기원문을 여는 용석의 가슴은 어느새 날개 달린 새가 되어 드높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새로운 도전 .....[그래 기원에서 내가 어느 정도 두는지 알아보자].....용석은 선배와 두던 바둑을 윗동네에 사는 개눈깔 할아버지 라는 분과 상대를 바꾸어 두던 시절이였다.
개눈깔 할아버지는 서울에 사시다가 귀향한 분으로 그분도 3급의 쟁쟁한 실력이 있던 분이고 용석은 그 할아버지와 두점으로 반반의 승률을 보이던 터라 기원에서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통할지 무척이나 궁금하였다.
용석이 기원문을 들어서자 바둑을 두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용석에세 쏠렸다. 기원안은 겨울이라 연탄난로가 이글그리며 훈훈하다 못해 덥게까지 느껴졌다.
용석이 기원으로 들어서서 쭈삣거리자 원장인듯한 분이 말을 건넨다.
"바둑두러 오셨어요?!"
"네.....!!"
"몇급 두시는 데요?"
"오급정도 둡니다.!!"
용석은 잠시 망서렸으나 이렇게 말했다.
원장이 기원안을 두리번 거리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송씨!!! 바둑좀 두어 드리지....."
원장이 부르자 기원구석에 앉아서 바둑책을 드려다 보던 중년의 꾀재재한 사내가 부시시 일어섰다.
-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