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케이블 TV에서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고 있던 중 친한 친구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늦은 주말 밤에 왠 전화인가 하고 받았더니 자기 아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전화를 끓고 순간 멍해졌습니다. 이 놈 아들이 고3 인데.. 검정고시 본다고 자퇴한 걸로 알고 있는데.. 하여간 검정 넥타이에 회색 양복을 주섬주섬 챙켜 입고 나가려다 문득 문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도무지 상주는 누가 되는 것이며 예를 어떻게 갖추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허둥지둥 나가려는 걸 멈추고 포털에 들어가 찾아 보았습니다.

자식이 죽으면 어쩔 수 없이 부모가 상주가 되는데 영정 앞에서는 절을 올리지 않고 간단히 목례 정도만 하는 걸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례 후 화장을 하며 봉분을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죽은 후에도 제사는 지내지 않는다고 하니 참으로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뭍 는다”는 옛말의 뜻을 실감하였습니다.

이 놈은 제 예전 직장의 입사 동기입니다. 89년에 입사하였으니 벌써 20년 가까이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 놈 와이프가 당시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고 당시 저하고도 딱 한번인가 데이트를 하고 커피를 마셨던가 아닌가 가물가물한 추억이 있습니다.

그걸 가지고 이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가 잘나서 나를 물리치고 결혼을 했다는 무용담(?)을 주저리주저리 자랑하곤 하는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는 놈 입니다. 그런 친구의 아들이 죽었으니 제가 화장장까지 안 갈 수가 없지요.

어제가 벽제에서 화장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버스가 먼저 출발했고 저는 조금 늦게 출발하면서 길까지 헤매다가 늦게 도착하였더니 벌써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첫날부터 전혀 심경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담담했던 친구 놈이 화장로에 아들의 관이 들어가니 결국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고 말더군요.

살아서도 그렇게 부모 속을 썩이더니 결국 끝까지 부모의 가슴에 멍을 들게 하고, 가고 말았구나… 남에게 얻어 맞으면 맞았지 절대 때리지는 못하는 성격의 온순한 아이였지만 공부를 못해서 내내 부모와 불화가 깊어만 갔고 스트레스로 머리가 왕창 한 움큼씩 빠지는 탈모증세까지 나타났다고 합니다.

공부를 시키려고 달래도 보고 폭력도 써보고 했지만 도통 들어 먹지 않았던 아이.. 아들을 바로 잡아 공부시키려고 수시로 행사하던 폭력으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더욱 더 멀어져 골만 깊어져 갔다고 합니다. 공부도 공부지만 아이가 가출까지 하는 극단의 상황까지 다다르자 결국 자퇴시키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학교에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대학에 뜻이 있으면 검정고시를 볼 수도 있으려니 한 것입니다.

제 아들도 밑에서 우등생이라 거기 까지 이르게 되었던 그 친구의 뼈 아팠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친구 아들의 죽음,

다시 한 번 사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를 졸업하고 최고의 직장을 다니고 많은 연봉을 받아도 그리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연봉이 많다고 꼭 경제적 여유가 그 만큼 더 있는 것은 아니지요. 경제적으로 풍요롭다고 항상 행복한 것은 더욱 아니고요.

똑똑하면 똑똑해서 자기 머리 믿고 재테크 하다가 귀중한 돈을 잃은 사람도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제 주제를 파악하고 겸손하게 바보처럼 하루하루 사는 사람과 종국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명문대를 못나왔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보다  결코 뒤지지 않는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또한 대학을 나왔다고 반드시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들보다 잘 사는 것은 아니겠지요. 정확하게 표현하면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비록 공부는 못해도 바른 인성과 건강한 체력을 갖고 올바르고 성실하게 사는 자세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어떻습니까? 공부를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데 안 된다면, 그 아이들에겐 분명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겁니다. 공부와 벽을 쌓고 사는 아이들도 반드시 다른 쪽에는 흥미와 동기부여가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냐?”친구의 한숨 섞인 말에 저도 눈시울이 불거졌습니다. 끝내 아들과 화해를 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서 버린 운명… 친구는 죽을 때까지 그 가슴의 멍을 쉽사리 지우지 못하고 그 짐을 부둥켜 안고 살아갈 것으로 생각하니 무어라 형용 못할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올라 옵니다.

친한 친구 아들의 죽음을 보면서 다시금 인생을 뒤돌아 봅니다. 부디 하늘나라에 가서는 공부를 못해도 차별을 받지 않는 그런 곳에서 편히 지내기를 손꼽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