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래도 그러고 있네.
에미가 밴도(도시락) 싸 가지고 금세 뒤 따라 간다고 허지안혀 !
배고프다고 핵교 안 갈 끼여 ! “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칭얼거리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죽 그릇을 치우며 등을 떼밀듯 소리를 질렀다 .
6.25 동란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끼니를 때우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전날 저녁도 씨레기죽 한사발로 허기를 채웠지만 아침도 역시 멀건 씨레기죽 한 사발 먹고 학교로 쫒아 버리니 때를 쓸 수밖에…….
10여리가 넘는 학교길은 큰 고개까지 넘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당도할 때쯤이면 지쳐버린다.
교문에 들어서면 버릇처럼 운동장 모퉁이 수도꼭지로 달려가 땀과 시장기를 달래고서야 교실로 들어서지만 물로 채운 배는 금세 꺼져버린다.
더구나 그날은 도시락 싸 가지고 뒤따라온다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바퀴를 떠나지 않아 수업시간의 선생님 말씀은 뒷전이고 이제나저제나 하며 창밖에만 시선이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도시락을 들고 허겁지겁 교문에 들어섰다 .
나는 단숨에 어머니에게로 달려가 손에 들린 도시락을 빼앗듯 낚아채며 말했다 .
“창피하단 말이야! 빨랑 가!”
헤어진 삼베적삼에 검정고무신, 몸빼바지 차림의 어머니의 꾀죄죄한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고 창피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 배 많이 고팟지야!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라이.
겨란말이가 좀 짜지야! 새우젓이 많이 들어가 그려.”
하며 내가 도시락을 다 비우고서야 빈 도시락 통을 받아들고 돌아갔다.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의 도시락에 꾹꾹 눌러 담겨있던 하얀 쌀밥과 계란말이를―
어머니의 체온처럼 미쳐 식지도 않았던 도시락의 꿀맛을 ―
단숨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던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행복이 눈물처럼 번지든 어머니의 그 눈초리를 ―
그날 저녁상에도 시래기죽 대신 흰 쌀밥과 미역국이 올라왔다.
어머니는 그날이 나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손가락에서 금반지가 없어진 것을 보았다.
평생을 훈장처럼 끼고 살던 당신의 결혼 반지였다.
누런 반지 대신 하얀 반지자국만 선명하게 남아 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자꾸 흐르는 눈물만 두 주먹으로 훔쳐내며 긴 밤을 꼬박 새웠다.
그 후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
학업을 마치고 군복무를 끝내고 직장을 잡기까지의 시간이었다.
15년 동안, 무엇이 그리도 슬펐고 무엇이 그리도 억울했던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날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주먹으로 눈물만 훔쳐내든 나의 어린 시절이 나를 놓아주지를 않고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어머니의 굵은 손마디에 선명히 남아있던 하얀 반지 자국은 나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첫 번째 월급을 타던 날,
나는 어머니의 속옷 한 벌과 그때 그 반지와 같은 뭉툭한 금반지 한 개를 사가지고 고향 가는 버스를 탔다 .
내 마음은 버스보다 더 앞서서 고향집으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내 마음보다도 더 먼저 동구 앞 정자나무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
나는 어머니의 굵디굵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드렸다 .
“ 이거 머여! 금반지 아니여!
어쩌면 이렇게도 꼭 맞디야 !”
어머니는 그때 그 반지 자리에 다시 끼워진 금반지를 보며 눈물이 글성글성해졌다.
15년 전, 도시락을 게 눈 감추듯 단숨에 먹어치우든 나를 흐뭇하게 지켜보며 눈물을 글썽거리던 어머니,
변하지 않은 그 모습을 다시 보며 나는 코끝이 찡-해졌다.
어머니의 눈 가장자리에는 주름살이 투성이로 늘어났지만, 15년 전 행복이 눈물처럼 젖어가던 어머니의 그 검은 눈망울에는 그때처럼 똑같이 눈물이 흥건히 고여 가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
어머니도 내 손을 꼭 쥐었다 .
서산마루에 걸친 저녁노을이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내일이 어머님의 기일이다.
쌓이고 쌓인 어머니의 정을,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쓸고 갔지만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코끝이 아려온다.
내일은 어머님의 제사상에 엎드려 눈물이나 실컷 흘려야 갰다.
칠순이 넘은 영감이 운다고 손가락질 하더라도 할 수 없다.
내일은 어머님 무릎에 기대어 마음껏 울어버려야겠다.
어- 머- 니이-(((((((((( ( ( ( ( ( 끝 )
(2008. 10 비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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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여름뜰
팔공선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