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간을 거부하는 산 맥킨리( Mckinley )

(알라스카의 명물은 역시 북미주에서 제일 높다는 맥킨리 산이지요.

맥킨리를 오르지 않고는 등산가임을 자랑스러워하지 마라. 하고 설파한 어느 산악인의 말을 생각하며 맥킨리로 향했습니다.)

맥킨리는 20,320피트(6,194m)로 북미주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

앵커라지 북쪽 120마일(200키로) 디날리(Denali) 국립공원에 자리한 바위와 얼음 그리고 만년설로 이루어진 거봉이다 .

미국 25대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를 기념하기위하여 1898년부터 맥킨리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했는데, 현지 주민들이 옛 이름 “디날리( 높은 산, 위대한 산 )” 찾아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 된다 .

산의 크기로는 히말라야(8,848m)를 당할 수는 없지만, 빙벽의 험준함이나 도처에 도사린 빙하와 크레바스 그리고 혹한, 저 산소, 악천후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힘든 등반코스로 알려져 있다.

항상 산허리에 두터운 구름을 휘감고 있어 속세에 제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 보이지 않기에 붙여진 이름일까

-인간을 거부하는 산 맥킨리-

맥킨리의 최초등반은 1913년 영국인 헨리 허드슨(H. Hudson)과 스타고우(Stakoo)에 의하여 성공되었다.

한국인으로는 1979년 고상돈에게 정상을 허락하였는데, 고상돈 일행이 정상정복 후 하산하던 중 목숨을 잃었던 산 이기도하다.

매년 5월-7월 3개월만 등반이 허용되는데, 2006년에는 등반전문가 230명이 도전하여 135명만이 정상정복에 성공했다니 성공률이 60%에도 못 미치는 험한 산이기도 하다.

관광객이 맥킨리를 가기 위해서는 경비행기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맥킨리 등반의 전초기지인 타키트나(Talkeetna) 라는 마을에서 여섯 사람이 한조가 되어 경비행기를 탔다.

옆자리의 인도에서 왔다는 노란제복의 승려는 비행기가 이륙하자 눈을 감고 염주를 돌리며 염불만 읊조린다.

산을 보겠다고 비행기를 탄 관광객이 산은 안보고 눈감고 주문만 외우는 것은 마음의 눈으로 산을 보는 것일까.

나 같은 범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모습이지만 성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경비행기는 맥킨리의 준봉들을 떠받들고 있는 깊이가 5000피드나 되는 루드(Ruth) 빙하를 지나 날카로운 바위봉우리 사이를 곡예 하듯 헤쳐 간다. 

산허리를 감고 있는 구름 띠를 뚫고 오르니 거기 영산 매킨리가 그 신비하고 장엄한 모습으로 우뚝 다가선다.

경비행기는 맥킨리를 한 바퀴 돌고 산자락 빙하위에 잠시 착륙한다. 

비행기에서 내려 맥킨리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영산의 신성함에 주눅이 든다.

신성불가침이란 이런 것일까.

경외(敬畏)하는 마음이 볼수록 더 커진다.

그 장대하고 준엄한 영산의 모습을 인간의 수식어로 덧칠한다는 것이 오히려 죄스러울 따름이다.

인도의 승려는 맥킨리를 향하여 합장을 하고 염불을 읊조리고 있다.

맥킨리 앞에 선 인간들의 모습이 너무도 왜소해 보인다.

맥킨리에 머리를 숙이고 잠시 눈을 감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세월을 넘어 온 듯 한 숙연함과 평온함이 온몸을 포근히 감싸준다.

맥킨리의 성스러움 앞에서 말을 잊고 서있던 인간들을 비행기가 다시 태우고 속세를 향하여 도망치듯 하강한다.

승려를 포함한 우리 일행은 천상의 세계를 몰래 훔쳐 본 송구스러움 때문일까,

속세에 내릴 때 까지 누구 하나 숨소리마저 죽이고 있었다.

우리는 거대한 자연 앞에 압도당했던 자신을 한참동안 찾지 못하고 있다가 타키트나(Talkeetna)에 착륙해서야 말과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와 ! 대단하네요. 맥킨리- ”

4) 산 사나이들의 묘비 앞에서

맥킨리는 한국의 전설적인 산 사나이 고 고상돈님의 영혼을 껴안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맥킨리에 영혼을 묻은 산 사나이들의 묘비가 산자락 밑에 말없이 서있다.

그 한쪽 구석에 고 고상돈님과 그리고 함께 간 고 이일교님의 묘비가 모셔져 있다.

머나먼 북극, 이국땅 산자락에 세월마저 비켜서 쓸쓸히 서있는 그들의 이 세상 마지막 흔적.

묘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는다.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정상에서 방송 전파를 타고 우리들 귓가에까지 다가와 쩌렁쩌렁 울리던 고 고상돈님의 목소리가 생생히 되 살아 난다.

그가 맥킨리 정상 정복 후 하산하다가 이일교님과 함께 크레바스에 추락하자 뒷사람을 위하여 자일을 끊어버린 때가 1979년.

벌써 29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 부인의 배속에 두고 간 아이가 30살의 젊은이가 되었다니 세월은 가도 흔적은 남는가 보다.

그 부인의 가슴속에는 혼자 가버린 남편의 어떤 흔적이 남아 있고, 아버지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던 그 젊은이의 가슴에는 어떤 모습으로 아버지의 흔적이 새겨져 있을까.

또 함께 간 이일교님은 이 세상에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가 어머니의 가슴속에 묻고 간 흔적을 후세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오래 기억 할까.

그들의 묘비 앞에서 한참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맥킨리를 오르다가 목숨을 바쳐버린 수많은 산 사람들!

137명의 영령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비문이 세월을 비켜서 산비탈 외로운 구석에 쓸쓸히 걸려있다.

거기에 국적 Korea라는 이름도 일곱 사람이나 눈에 들어온다.

가버린 그들의 이 세상 마지막 흔적인 비문을 만져본다.

그들은 왜 머나먼 이국의 산속에 목숨을 던져버렸을까?

가족도 버리고

젊음도 버리고

인생마저 던져버린

그들이 남긴 흔적이 과연 무엇일까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산 !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거기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고-

(주: 자료에 의하면 고 고상돈님이 스스로 자일을 끊었다는 기록과 단순 자일사고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저는 의로운 죽음 쪽을 택했습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