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본능에 가까운 존재일까. 아니면 스스로 의지를 관철해가는 존재일까. 달리 표현하면, 우리는 어느 정도 문화적인 존재일까.

그런 의문이 바둑에서도 가끔 주어질 때가 있다. 가령 우리의 최근 수법이 이미 오래 전에 두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때 그러하다. 단순히 한 번 정도 실험된 것이 아니라, 그 어느 시대에 매우 유력하게 상용될 때가 있었던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하다.

기보를 보자. 두 점 접바둑인데 초점은 좌하귀 흑6. 우리의 상식에는, 이 수는 1980년대 일본의 다께미야 9단이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 지향적인 이 수법은 한 동안 프로들 사이에서도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바둑은 1775년 12월 17일의 작품이다. 누가 두었을까. 14살의 소녀 요코세키 이호(橫關伊保)가 둔 것이다. 당시는 프로 아마의 구별은 없었고 그저 단과 급의 구별만 있던 시절인데, 그 소녀는 3년 뒤 17세에 초단을 인허 받은 일본 최초의 여류였다. 재밌는 것이, 이 바둑은 소녀의 자택에서 내기꾼(安岡 周平)과 대국한 것으로, 당시의 사회가 바둑을 어느 정도 애호했는지를 알려준다 하겠다.

그런데 저 수는 당시 일반 애기가들 사이에서는 드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이전에도 두어진 적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까. 기보를 잠깐 더 보면, 우하귀 흑10 마늘모는 19세기 중반 기성이라 불린 슈사쿠가 애용하던 그 착실한 수법. 물론 흑10은 이 바둑 이전에도 오랫동안 두어졌다.

아, 참. 흑6과 흑10은 서로 연관성이 있을까 없을까. 둘 다 마늘모 행마이니 말이다. 왜 없겠는가. 모두 시대를 타고 내려온 것이지 않겠는가. 흑10 다음의 수순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좌변에 벌린 흑22가 그러하다.

알려진 역사는 짧다. 우리가 우리를 알아온 시간은 더욱 짧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것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매우 연속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여지는 높지 않을까 싶다. 아닌가. 이를 인정하면 보수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