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은 신비하고 모호한 세계일까. 아니면 냉정하게 논리적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세계일까. 아마도 그에 대한 답의 하나는 현대 과학, 그 중에서도 인지(認知)과학의 연구에 일부 맡길 수밖에 없을 듯하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파악하고 또 그에 대한 인상을 표출하는가? 그런 문제.

사실, 이런 얘기 꺼내는 까닭은 요즘 중국에서 연구되고 있는 한 칸을 보고 느낀 의문 때문이다. 기보에서 보면 좌상귀 백6이 그것인데, 반드시 이런 국면에서만 저 백6을 두는 것이 아니다. 백6을 설명하는데 오늘 포석이 적합하기 때문에 제시한 것뿐이다.

그 동안 싫증이 나도록 두어온 것은 백6이 아니라 백A 날일자였다. 실리를 중시하기에, 그리고 부분 전투가 치열해졌기 때문에 견실한 A를 선호했던 것이다. 그런데 귀가 견실해지는 경향 따라 변의 가치 또한 높아져갔는데, 귀와 귀 사이가 변의 영역이니, 자연히 변의 중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변이 강조되면 A가 아니라 백6의 의미가 살아난다. B에 침입하는 것이 좀 더 강력해지기 때문이다. 비록 한 줄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자, 그건 그렇고 정말 귀와 변은 존재하는 것일까. 하겠다. 그렇다면 명확하게 경계를 그을 수 있는가? 귀와 변의 가치에 따라 달라지겠다. 그와 관련해서 재밌는 현상을 오래 전에 발견한 적 있었다. 기사들에게 귀와 변의 경계를 선으로 그어보라 펜을 주었더니, 대부분 난감해했다. 그러면서 구별하는 방법은 삐뚤삐뚤한 선으로 그리는 것이었다.

우하귀를 보자. 경직되게 a를 경계로 귀와 변을 나눈 기사는 거의 없었다. 좌하귀에서 보듯, b처럼 경계선이 들쑥날쑥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b가 귀의 경계선이라면 그건 b가 변의 경계선이라는 의미도 된다.

경계를 긋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러나 경계를 갖지 않으면 우리의 인식에는 고통이 따른다. 인식 자체도 어렵다. 정방형 격자무늬 속에서 공간을 인식해야 하는 기사들의 무의식적 어려움 하나는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승부는 물론 반상을 넘어서서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는 그런 현상….